공감능력이 올라가더군요.
소설의 유용함에 대하여 2
최근 3년 동안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전에도 읽긴 했지만, 3년 동안은 다른 일 보다 앞서 책 읽기를 했다. 큰 뜻이 있기보다는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뿌듯해서다. 또, 동생이 독립서점의 서평 쓰는 일을 부탁했기에 읽었다. 기억하는 힘의 한계랄까? 읽고 나면 쉬이 잊고 말지만, 그래도 책의 조각들이 남았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을 순서대로 나열해 볼까? 3년을 모두 합쳐 보면, 역사 (특히 세계사), 재테크 (한동안 읽고 나니 지금은 거의 읽지 않는다), 에세이 (퇴사 관련, 특별한 직업을 가지신 분, 가족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주로 읽었다.), 자서전, 자기 계발서 (지금은 데일 카네기가 쓴 책 말고는 보지 않는다). 비율을 변했지만, 여기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최근 1년 동안 소설을 읽었다. 읽을 이유를 특별히 찾지 못해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 앞으로 당겼다. 독서모임도, 동생이 요청하는 서평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가게 했다. 한참을 읽고 나니 소설의 유요함을 깨달았다. <소설의 유용함에 대하여>라는 글도 썼다.
<소설의 유용함에 대하여>를 요약해 볼까? 우린 때때로, 생각하나에 푹 빠져 있을 때가 있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마치 물속에서 가쁜 숨을 쉬는 일만이 겨우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까? 풀리지 않는 문제가 거대한 생각이 되고, 답이 없는 생각에 같은 자리를 빙빙 돈다. 그때, 난 소설을 만났고, 나를 옥죄어 오던 생각을 잠시나마 가져갔다.
<소설이 주는 유용함에 대하여 2>는 소설을 일고 생긴 입버릇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이해는 된다."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다. 나를 이해하는 일을 물론이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어렵다. 그래서 온갖 심리테스트가 있고, MBTI가 열풍이었다. 과거라고 다르지 않다. 토정비결이니, 사주니, 관상이니 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아가 앞으로 어떤 일이 있는지 물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니 이해가 된다는 말을 잦게 한다.
내 문장의 뜻은 <도둑맞은 집중>에서 알게 되었다. 요크대학교 (York University) 심리학 교수 레이먼드 마 (Raymond Mar)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과 비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두 가지 실험을 했는데, 첫 번째는 눈 주변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다음 질문을 했다.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다음 실험은 두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 사람의 관계, 지금 상황에 대한 질문을 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글 제목을 보고, 내 의도를 아시는 재빠른 분들은 아실 테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 잘 읽어냈다.
왜일까? 레이먼드 마 교수는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동기, 목표를 이해하려 애쓰고, 다양한 요소를 따라가려고 한다. 이건 일종의 연습이다. 아마 현실에서도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와 똑같은 인지과정을 사용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p135-136, 2023).
공감도 연습이 필요하다. 다만,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경험을 쌓는 일은 한계가 있다. 우린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레이먼드 마 교수가 말한 것처럼 소설을 읽는다면, 우리는 새소룽 사람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기회가 된다. 공감의 연습은 결국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공감하며 확장해 간다. 이웃이 되고, 크게는 국가와 지구로 넓어진다.
소설을 읽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 읽어야 할 책 순서를 바꿔본다. 다른 이의 인생을 경험하는 소설로 말이다. 그들의 세계에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이 말을 할 테다.
"그럴 수도 있지. 이해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