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디에 계셨나요?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
시대를 기억하는 기점이 있다. 세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2002년 월드컵이다. 대학교에서 조교로 실험을 보조할 때, 신입생들에게 꼭 물어보는 사건이 바로 월드컵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어디에 있었어?' 돌아오는 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자신들은 겨우 고개를 가눌 정도의 나이라고 한다. 그들과 내 세대에 커다란 틈이 있는 사실에 대화를 멈칫한다.
2002년 월드컵 20주년 특집. 잊고 있던 시간이 떠올랐다. 마음이 더워진다. 중학교쯤? 작디작은 시골에도 월드컵 기운이 넘어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시간이 흘렀지만, 두 장면이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하나는 이탈리아전, 다른 하나는 스페인전이다.
이탈리아전은 비장함이 감돌았다. 시골 강변에는 철제 기구가 세워지고, 하얀 천이 팽팽하게 걸린다. 전국 어디에서든 월드컵을 볼 수 있고, 봐야만 한 날이다. 집에서만 보기에는 벅찬 그 경기를 우리는 함께 응원하며 밖에서 봤다. 소리를 지르고, 응원을 했다. 강한 힘으로 보낸 힘이 약했나 보다. 패색이 짙어지니, 몇 명은 자리를 떠났다. 아마 그분들은 깊게 후회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 후회의 대열에 낄뻔했다. 자리를 털고 가려고 했다. '그래도', '그래도'라는 마음으로 스크린 뒤에 있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극적인 동점골도 잊고, 여기까지 오는 것도 대단하다며 마음을 돌리려는 찰나. 그림 같은 골이 들어갔다. 귀는 멍멍해지고, 소리를 질렀다. 누가 소설을 그렇게 썼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욕을 먹을 만큼, 연출을 하려 해도 하기 어려운 장면.
다음은 스페인 전. 이번에는 집이다. 거기다, 교장선생님의 공약(?)도 있었다. 스페인 전을 이긴다면, 다음 경기일에는 학교를 휴교하겠다. 마음이 두근거리는 경기를 기다렸다. 주어진 시간으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연장전이었다. 선수들을 지쳤고,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기적이라며 토닥이며 마음 한편이 무너졌다. 지지 부진하던 경기는 점점 밀려나는 경기가 되었다. 겨우 도착한 마지막에는 PK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가 찰 때는 실수를 바라고, 골키퍼의 예상이 맞길 기도했다. 우리 선수가 찰 때는 상대 골키퍼가 실수하길, 우리 공이 강하고 정확하게 들어가길 바랐다. 주고받은 골이 같다. 젊은 스페인 선수가 주춤 거리며 골을 찬다. 이운재 선수는 날았다. 막아냈다. 이제는 영원한 리베로, 영원한 주장이 찬다. 정확하고 빠르게 공이 그물을 가른다. 사실 그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가족과 얼싸안았다. 이겼다, 학교는 쉬었다.
난 그날 시골집에 있었고, 강변에 있었다. 글을 쓰며, 영상을 찾아보거나, 스코어를 찾지 않았다. 필요가 없었다. 글을 쓰려고 불러온 기억은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 나누는 일을 참 재미있다. 선명하게 다가온 같은 사건을 모두 어떤 방식으로 받아냈는지 알아가는 일을 기억을 공유하는 일이 된다. 2002년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같은 사건을 진하게 찍어낸 도장이다. 각자 몸에 있는 도장을 보며, 우리는 삶을 나눈다. 겹치는 장면이 많을수록 우린 가까운 사람이 된다.
단순히, 월드컵만 있을까? 아니다. 온 세대를 아우르는 작은 도장이 참 많다. 짧은 CF에서 나오는 음악이 되기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어나 모두가 기다린 만화영화가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춤이 될 수도 있고, 노래일 수도 있다. '응답하라'시리즈가 열풍을 분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응답하라를 보며, 부모님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장면 속에 있는 지금의 부모님을 떠올리니 울컥거리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멈칫한 대화를 다시 이어간다. 그들에게 세대를 묶어내는 기억이 궁금하다. 그들이 말하는 장면에 난 어디에 있었을까? 또,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이지만, 세대를 묶어내는 이야기가 그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들어보니, 거기에 내가 있었다.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