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뜻으로 밀고 나갈 반항이 필요하다. 한 번은.
모범생의 비애.
모범생이었다. 공부를 눈에 띄게 잘하는 우등생이라기보다는 문제없이 학교를 다닌 학생이다. 사전을 볼까?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이라고 한다. 학업은 시골에서 고만고만한 친구들 사이에서 거든 성적이라 본받을 만하다 하기 어렵고, 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해 누군가에게 보일 만한 수준도 아니다. 넓게 보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학교를 다닌 아니 들도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기대를 어긋나지 않게 선생님의 예측에 빗나가지 않게 지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일탈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모범생의 기준으로 일탈이지 지금 보니 일탈도 아니다), 대학원까지. 지금 곰곰 생각해 보면 부모님 기대에 숨어있는 겁 많은 자식이었고, 선생님의 예측에서 안온하게 있던 학생으로 살아낸 것일 뿐이었다.
모범생이라는 빛나는 탈을 쓰고 겁을 숨겼고, 안전한 곳에서 살았다. 대학원까지 이어졌다. 기나긴 학생 신분은 끝났고, 사회에 나가야 했다. 이때, 난 모범생이라는 가면을 벗고 탕아로 갔어야 했다.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안전한 길, 선생님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나아가야 했다. 숨겨둔 마음이 빼꼼하고 나왔다.
감춰둔 마음을 보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 변명으로 피해 가고 싶고,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합리화를 꺼내드니 말이다. 보인 마음을 바로 "덕을 보려던 마음"이 한 조각 있었다.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에 주어지는 부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때 난 탕아가 되었어야 했다. 내가 길을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순간을 겪어냈어야 했다. 아무런 덕 없이, 스스로 극복하는 힘을 키워해는 기회로 삼아야 했다. 탕아가 되기에는 겁이 많았고, 탕아가 되기에는 이 따스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은 무엇이든 내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진다. 아니 노력 중이다. 글쓰기가 그렇고, 책을 내는 일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막사는 건 아니다. 내 마음대로만 사는 일도 아니다. 깊게 고민하고 선택해 걸어간다. 내가 이런 결정을 여차 저차 한 과정으로 했다고 꼭 알려드린다. 우려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에만 담아둔다.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있다고 하면 내가 겪어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모범생이었던 내가 조금의 미련이 있다면, 나이가 조금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용기가 생겼고, 나만의 힘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았다면, 아마 더 이른 시기에 진짜 내 마음을 알고 떨치고 일어났을 텐데라는 후회가 날카롭게 찌른다.
부모님의 말씀만 듣고 산 시간들이 모두 후회하는 건 아니다. 또,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잘못된 길도 아니다.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지우는 아쉬운 점이 있다. 안다. 지금 하는 생각은 그때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범생은 삶 전반에 걸쳐 한 번은 반항을 해야 한다. 어른들이 맞다고 하는 길이 사실 틀린 길일 수도 있다. 내게 조언하시는 분들의 마음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지만, 말씀해 주는 길을 가보시진 않은 경우가 잦다. 그분들도 작은 창으로 그 길을 엿본 것일 뿐이다.
인생은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그분들이 안내하는 길이나, 내가 선택한 길이나 그 끝을 모르긴 매한가지 아닐까? 탕아로 살다 보면, 쌓이는 경험치가 있다. 그 경험이 곧 나고 내가 곧 그 경험을 온전히 받아 안아야 성장할 수 있다. 다만, 꼭 알려야 한다. 탕아가 된다고 모든 인연을 끊어내고 홀로 가는 일은 아니다. 나에게 소중한 이들, 가족과 선생님에게 가는 길을 말씀드리고, 그들의 우려를 마음에만 담아가야 한다.
여행을 떠나는 탕아도 출발지에서 보내는 응원이 필요하고, 내가 돌아올 따스한 집 정도는 있어야 마음이 든든할 테니. 오늘은 모범생이라는 가면을 집에 두고 탕아로 나가본다. 등 뒤에 있는 따듯한 집이 그립고, 알 수 없는 길이 두렵지만. 모범생의 비애를 던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