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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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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Oct 25. 2023

철판요리 공연을 보고 예술을 먹었습니다.

얼굴이 담은 마음.

철판요리 공연을 보고 예술을 먹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면, 맛집에 간다. 최근 여자친구와 함께 쌓은 시간이 높아져 기념을 위해 맛집을 다녀왔다. 여러 후보가 경쟁을 했다. 초밥집도 나왔고, 멋진 코스가 차례로 나오는 레스토랑도 나왔다. 경쟁을 과열케 하고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더해졌다. 이때, 강한 결단력을 가진 그녀가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철판 요리로 간다!"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길에도 여유롭게 갈 수 있으며, 맛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익숙한 동네의 생각지 못한 가게를 찾아내 지도에 표시하고, 낯선 동네에 익숙한 메뉴를 따라 좋아요를 눌러 징표를 남겨두었다. 서로가 고른 식당을 나눠 가지고 심사 숙고했다. 한 곳이 정해졌다. 예약을 하고 때를 기다렸다. 


  손꼽아 기다리는 그날,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담은 손 편지를 나누어 가졌다. 낭독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감동을 먹어보자며, 지금은 배를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합의했다. 빠르게 차를 몰아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에는 엄숙한 문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예약자는 정시가 되면 들어오실 수 있다.' 잘 닦여있는 유리 너머로 두 분이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멋진 요리가 준비되고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잠시 돌렸다. 그렇다고 허기는 어디 가지 않았다. 배고픔을 달래려 노상 분식집에서 어묵 한 꼬치와 닭꼬치 하나를 먹고는 잠시 걸었다. 가게 열기 5분 전 맞춰 가니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허겁지겁 그들의 끝에 섰다. 우리 뒤에서 차례로 손님들이 줄을 섰다. 시간이 땡 하니, 사장님이 웃으며 안내를 하신다. 기다란 철판을 옆에 두며 들어갔다. 깔끔하게 자른 머리, 다부진 몸을 가지신 사장님은 주문을 받아 내신다. 서로 다른 토핑과 메뉴에도 적지 않고 기억에 새기시려는 듯 천천히.


공연을 기다리는 순간.


  주문을 다 받으신 사장님은 음식을 시작하신다. 낮게 깔려 있던 음악 소리는 한 계단을 올라가 존재감을 알린다. 손님들은 같이 온 이들과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하다, 멈추고 사장님을 본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재료를 꺼내고, 분류하신다.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 고기가 치이 거리며 뿜어내는 내음이 가게를 채운다. 


  땀을 흘리시며, 리듬을 탄다. 얼굴에는 진지한 표정과 웃음이 교차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그분은 지금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 우린 표정으로 많은 사실을 알기도 한다. 일을 마지못해 하는지, 좋아서 하는 일인지.  어떤 정치인이 그의 업을 끝낼 때, 자신의 자신을 찾아봤다고 했다. 무척 날카롭고, 예리하게 벼려졌지만 너무 고통스러운 표정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고매한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자연스럽게 피어난 생각은 질문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난 내가 일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짓지?"


  마음이 가장 앞장서 있는 것은 얼굴이 아닐까? 그 얼굴이 표정으로 자신의 심경을 분출하고 있다. 가끔은 스스로도 모른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글을 쓰며, 나는 내 얼굴에 어떤 마음을 새기고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있으니, 환한 웃음을 지은 사장님이 내게 작품을 권한다. 


  "다 되었습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난 고개를 끄덕이고 한입을 조심스레 넣었다. 짭짤하며, 달큼한 맛이 불향과 함께 넘어온다. 두 번째 젓가락을 가져가자 다시 치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 공연이 시작된다. 집중한 표정, 미세하게 새겨진 웃음.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이 가득 채워지는 예술이 펼쳐진다. 


음식이라는 예술이 배달된 장면.



철판요리가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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