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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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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ug 18. 2022

고림동 브라더스

궁상스러운 일상

궁상스러운 일상


요즘 궁상스럽게 산다. 소비를 줄이고 투자를 늘리는 목적이 크지만, 줄어든 소비는 스스로를 궁상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혼자 있거나, 글을 쓸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돈을 쓸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궁상스러움은 무척 커진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2년 전 몰티즈 한 마리를 입양했다. 매일 산책도 하고, 우리 집의 마스코트인 녀석은 이제 당당히 '희망'이라는 이름과 함께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산책을 자주 간 덕인지, 내가 산책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인지 그 녀석의 발톱은 무지 짧다. 최근에 비가 장기간 내리려 산책을 못 가는 녀석은 화를 벌컥벌컥 내기까지 한다. 그래서 '강아지 앞 가방' 또는 '강아지 이동가방'을 살려고 했는데, 가격이 참.. 살벌하다. 18만 원이라니(욕이나오는 금액과 욕과 같은 발음의 금액이라니 매우 적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강아지는 마음으로 아 돈으로 길러진다"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모금을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다가가 조용히 이야기했는데, 조용히 거절당했다. 카페와 서점을 운영하는 대표인 동생과의 이틀간의 장기간의 협상 끝에 구매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서로 외식을 줄이자는 결심과 함께 말이다. 눈치싸움과 은행 계좌를 수시로 확인하는 일은 꽤나 궁상스러웠다. 음.. 지지리 궁상이었다.


마음껏 하지 못하는 소비는 궁상스러운 일상을 만들더라.


고림동 브라더스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소설이 있다. <불편한 편의점>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신 김호연 작가의 작품으로 동네 일상을 그리는 소설이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의 만화작가, 강제로 기러기 아빠가 된 백수,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학생, 망가져가고 있는 왕년의 만화 스토리 작가가 망원동 옥탑방에 모여 투닥거리는 궁상스러운 일상을 그려내는 소설이다.


궁상스럽다에다가는 '지지리'를 붙여야 그 맛이 산다. 그들은 지지리 궁상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사전에서 지지리 궁상을 찾아봤더니, 지지리는 '아주 몹시 또는 지긋지긋하게'라는 말이고, 궁상은 "어렵고 궁한 상태"를 이른다. 지지리 궁상은 "아주 몹시 어렵고 궁한 상태"를 뜻하게 된다. 내가 그 짝인가 싶다.


그래도 책을 다 읽곤 '지지리 궁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변했는데, 바로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태'이다. 아주 몹시 어렵고 궁한 상태라는 건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가장 낮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조금의 꿈틀 거림만으로도 반등이 보이는 상태는 아닐까?


동생과 나는 고림동 브라더스로 지금은 지지리 궁상으로 뭐하나 사는데도 눈치를 본다. 자영업자는 늘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젠간 반등한 고림동 브라더스가 되길 기다린다.




변화한 의미는 누군가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을 효과적으로 방어해낸다. 이제는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이 칭찬으로 까지 들린다. "음, 내가 지금 반등의 기회를 노리는걸 어떻게 알고!"라며 말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는 그렇게 지지리 궁상도 아니다. 적당한 궁상이지.



우리의 가족 희망

P.S. 아직 사주진 못했지만, 희망아 형이 앞 가방은 조만간 꼭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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