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한 장짜리 자서전을 써볼까?
책을 좋아한다. 작가가 남겨준 생각을 따라가는 일도 즐겁고, 그들과 대화하며 생각을 넓히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다. 책 그 자체도 좋아한다. 비슷한 색을 가진 책이 줄을 서있는 모습도 좋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부르는 책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일도 즐긴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서점 가는 일을 좋아한다. 독립서점을 방문하고 글을 쓰고, 대형 서점의 지점을 가며 느낀 바를 글로 쌓아놓고 보여드리고 있다. 생각은 계속 자라나니, 세계에는 어떤 서점이 있을까 궁금했다. 책을 한 권 만났다.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읽으며, 동생의 독립서점이 나아갈 방향을 느끼기도 했고, 꼭 가고 싶은 서점이 생기기도 했다.
가장 가고 싶은 책방은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1919년 11월 19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문을 연 날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3월 1일 목숨을 걸고 사라진 나라를 잊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 104년 전 일이다.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책방 이름에 있는 컴퍼니가 있듯, 동료들을 모이는 마력을 가진 공간으로 자라난다.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피츠제널드가 오간다. 그들의 정신과 예술의 은신처가 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계가 전쟁의 화마에 빠지니 서점이 휘청거린다. 그때마다 동료들이 나타나 지켜냈다.
세계 2차 대전은 피하기 어려웠다. 역부족이었다. 독일에게 협력하지 않았고, 수용소에 잡혀갔다 풀려났다. 쇠약해진 몸과 마음은 더 이상 서점을 유지키 어려웠다. 문을 닫았다. 정신이 위대한 점은 실체가 없어도, 살아남아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 휘트먼이 1940년 정신을 이어받아 서점을 연다. 입구 계단에 적힌 문장으로 초심을 새겨놓았다.
인류를 위해 살아라 (Live for humanity)
배고픈 작가를 먹게 하라. (Feed the straving writer)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les in diguise)
수프를 끓여 제공했다고 한다. 한발 나아가 책 더미 사이에 간이침대를 두고 궁핍한 작가들을 재웠다. 서점에 다른 이름이 붙었는데, 바로 잡초여관이다.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다. 하루에 책 한 권 읽기, 두 시간씩 서점일 돕기, 한 장짜리 자서전 쓰기다. 그렇게 모인 자서전이 1 만 여장이 놓여있다.
글을 쓰고 있으니, 언젠가는 잡초여관에 머물고 싶어 진다. 하루에 책 한 권 읽고, 두 시간씩 서점 일을 돕는 것. 마음이 쓰이는 건 한 장짜리 자서전 쓰기다. 생활이 어렵지만 놓을 수 없는 글쓰기를 하며 무엇을 쓸까? 자본주의에서 퇴출당한 패배자고 글을 쓸까? 아니면, 여기까지 온 내 선택을 탓할까?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욕하는 글을 쓸까?
서랍에 바뀌는 임시 제목을 달아둔 짧은 자서전의 글을 후다닥 썼다. 생각을 비워해고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쓰고 난, 부정적인 문장도, 문단도 없다. 퇴고를 하고, 고치고 있으니 잡초 여관 한편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그들이 주는 수프를 한 숟갈 후루룩 먹은 듯 마음이 따스해진다.
한 장 자서전을 다듬고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