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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an 24. 2024

예민하던 연구자를 평온하게 한 놀라운 그것은?

뭉툭해졌습니다.

예민하던 연구자, 평온하게 한 놀라운 그것은?


  난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성격이 예민한 탓도 있고, 연구를 오래 한 탓도 있다. 고민했다. 왜? 어려서부터 예민한 건 이유를 잘 모르니 밀어냈다. 연구를 하며 왜 예민해진 걸까 고뇌한 적이 있다. 연구에서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실험은 통제된 상황에서 결과를 보는 일이다. 조금의 변화를 알아차려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고 자그마한 이유로 결과를 해석할 필요도 있다. 연구를 할수록 난 예리한 도구가 된다. 


  연구에선 환영받던 뾰족함은 일상에서는 문제를 일으킨다. 실험이 끝나고 일상에서도 곤두서있다. 쓸데없는 일에 과하게 신경을 쓴다. 가느다란 줄에 서있으니, 예민함은 불안으로 쉬히 변한다. 곧이어 불안은 고민이라는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사람들을 찌르고 다닌다. 일그러진 얼굴. 톡 쏘는 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내게 자주 상처를 몸에 새겼다. 


  2년 전. 극적으로 변했다. 불편한 일은 줄었다. 화나는 빈도는 떨어졌다. '그럴 수 있지'가 입버릇이 되었다. 다른 이의 말을 오래 듣는 힘이 생겼다. 무엇이 날 변화케 했을까? 노래 한곡을 듣고는 떠올랐다. 샤이니 키 <Good & Great>


  "뭉툭해진 나를 느낀 건"

  "세상 위에 내가 많이 쓰인 것"


  날카롭게 하던 나를 뭉툭하게 한 건 '글쓰기'다. 글쓰기는 내면을 보이는 일이라 한다. 같은 소재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글이 나온다.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글이 나온 온다. 내면은 살아 움직인다. 변화한다. 처음 열어본 내 속에는 뾰족한 창이 줄지어 서있었다. 



  예리하게 벼려져 있는 무기 끝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까운 이의 피가 흥건했다. 내 피로 비릿했다. 무기를 뽑아 글을 썼다. 피가 글로 쓰였다. 아픔을 보였다. 고통을 보여줬다. 한참 쓰니 글씨가 적히지 않았다. 피가 다 떨어졌다.


  나를 관찰했다. 타인을 들여다봤다. 잉크를 찍어 쓰기 시작했다. 쓸수록 글씨는 두꺼워졌다. 무기였던 뾰족함은 무뎌졌다. 창은 연필이 되었다. 가지런히 놓았다. 글을 계속 썼다. 세상 위에 나를 보였다. 많이 썼다. 뭉툭해졌다. 평온해지는 순간이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글쓰기의 출발은 나다. 누가 읽느냐 물을 수 있다. 있다. 바로 나다. 시간이 흐른 뒤 글을 읽으면, 낯선 나를 만난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쓰는 일이 시작이다. 용기를 내어 공개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어 할 수 있다. 하지만, 있다. 놀랍지만, 어떤 때는 황당하지만 있다. 내 피가 묻어 있던 팬으로 적은 글에는 누군가 위로를 받는다. 나도 그랬다고. 타인을 찌른 피로 쓴 글은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뭉툭해진 펜으로 쓴 글은 잊고 있던 일상을 찾기도 한다. 예민하던 일상이 불안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이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예민하던 내가 평온해진 길은 바로 글쓰기였다고. 쓰시라고, 그럼 평온을 찾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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