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아요.
"나 참 별로야." OOO 사람 의외로 자주 하는 이유?
나를 폄하한다.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지난 흔적의 티끌을 잡아내 눈앞에 두고 얼마나 크냐고 화들짝 놀란다. 마지막으로 닿은 말은
"나 참 별로야"로 끝맺는다.
어떤 때 이 말이 불쑥 튀어나올까? 바로, 내가 하던 일이 잘 안 될 때다. 가끔 난 성실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잘해서가 아니라, 고개를 돌렸다 봐도 그 일을 하고 있는 덕분이리라. 새로운 도전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신경을 내어 주는 게으른 사람인 나를 착각한 모양이다.
성실을 사전에 찾으면,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무거운 말 두 개가 붙어있다. 정성과 참됨. 둘 다 참 어렵다. 거기다, 이건 마음이다. 다른 이가 본다고 단박에 알아차릴 수도 없다. 가끔 나도 나를 모른다. 시간을 두고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시간이 쌓여야만 알 수 있다.
내 주위에는 정말 '성실'을 의인화한 사람이 있다. 그분들을 보며 누군가 내게 성실이라는 단어를 말한다면, 뜨끔한다. 숨겨진 내 게으름이 효과적으로 가려진 모습에 불편하다. '진짜' 성실한 이들을 관찰해 보면 (모두는 아니다) 일과 자신이 포개진다.
일이 곧 나의 일부분이고, 내가 곧 일의 일부분이다. 나를 다루듯 정성스럽게 일을 다루고, 참된 마음으로 일을 행하는 듯한다. 일이 조금 어긋나면 스스로에게 야단을 치면 하는 말이 있다.
"나 참 별로야."
단어의 뜻을 잘 뜯어보자. 일과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성실은 일을 참되고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이지, 일이 잘되고 못되고는 아니다. 열마 살지 않았지만, 일의 성패는 인간에게 달려있지 않다.
그럼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일이 잘되는 거라는 건데, 그럴 일이 없다. 남송 시대 성리학자 호인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주사위는 사람이, 결정은 야훼께서" (잠언 16장 33절),라고 했다.
성실한 이들이 스스로에게 "나 참 별로야."라고 할 때마다 하고픈 말이다. 일은 그대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뾰족한 말로 찌르지 말라고.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건 사람의 탓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성실하지도 않은 내가 "나 참 별로야."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자만한 탓도 있고, 내가 하는 일이 곧라고 착각한 탓도 있을 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려 한다. 일은 곧 내가 아니고, 사실 난 그렇게 성실하지도 않으니, 그냥 하라고. 일의 성패는 내가 아니라,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성실한 모든 이들에게 말하리라.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대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