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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가 돌아갈 곳 #2

선 넘는 부동산 중개사 #2

by Starry Garden
선 넘는 부동산 중개사 #2

독립서점이 꾸준한 수익을 기대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독서모임, 필사 모임, 글쓰기 모임이 안정화될 시간이 필요하고, 책도 쌓여가야 독립서점으로의 내공이 생긴다. 그 시간을 견딜 방법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투자금으로 버틸 테지만, 그것도 마냥 길어질 수 없으니, 조그마한 카페도 겸할 생각이었다. 물론 당장 같이 시작하긴 어려워 가능 여부만은 알고 싶긴 했었다.


"카페가 되는 건 맞나요?"


부동산 중개사의 눈은 커지며, 나를 비웃으며 바라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가능 여부는 계약하는 사람이 알아보는 거지. 젊어서 그런지 아니면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나 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부동산 중개사가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중개 수수료라는 걸 왜 받는 걸까? 그리고 하는 말이 더 어처구니없었다.


"여기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7만 원 부가세 포함이야. 돈 있지? 계약금을 집주인한테 바로 줘야 해. 100만 원. 가능하지? 지금 바로 줘. 그리고 주는 김에 내 중개 수수료도 깔끔하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집주인도 한번 본 게 다고, 계약서는 물론이고 등기부등본도 보지 못했고, 그녀가 말한 카페가 허가되는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계약금은 무슨 소리이고, 중개 수수료는 무슨 소리인가? 내가 자취한 원룸도 그렇게 하진 않았기에, 나는 황당한 얼굴에서 일그러지는 얼굴로 변했다. 나도 이제는 말이 곱게 나가진 못했다.


"저기요. 허가 여부도 모르고, 서류도 못 봤는데 계약금은 무슨 소리고 중개료는 무슨 소리죠?"


그녀는 한숨을 쉬며, "아까 말했잖아. 이렇게 작은 물건은 이렇게 한다고. 그리고 서류는 뭐? 등기부등본? 그거 지금 보면 되는 거 아냐? 요즘 젊은 사람은 정부 24로 바로 보던데. 그런 거 몰라? 그리고 중개 수수료를 먼저 주면 얼마나 좋아."


"지금은 안되고요. 일단 허가가 되는지 알아볼게요. 아니, 이것도 중개사에서 알아 봐주는 거 아닌가요?"


"무슨 소리야. 허가 관계라든지, 가능 여부는 부동산 중개사가 하는 일 아니야. 그거 알아서 해야지. 그럼 이 가게 다른 사람한테 나가도 나는 모른다. 그게 걱정돼서 빨리 달라는 거지. 젊은 사람이 몰라도 참 몰라. 그럼 가서 알아봐."


갑자기 그녀의 태도는 동냥하러 온 거지를 내쫓는 대갓집 마나님처럼 나를 내보냈다. 열받아, 이런 일이 일반적인 일인지를 알아야 했다. 대구에서 부동산 중개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 끝에 친구가 받았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한참을 듣던 친구는 한마디 했다.


"그런 걸 네가 하면 중개수수료는 왜 받냐. 이상한 사람이다. 계약금은 뭐고 중개 수수료는 또 뭐야. 그래도 야, 장사하면 별의 별사람 다 있다. 지역에서 장사하려면 척지는 건 좋진 않다. 네가 알아보고 하는 게 어때?"


"야.... 아오 열받아."


"야, 야 내가 알아봐 줄게. 카페가 되는 건지. 서점이 되는 건지. 그건 걱정 말아라."


화가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친구가 있다는 것에 고마웠고, 선뜻 나서서 알아봐 준다기에 감사했다.


화는 다음날까지 갔다. 점심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복잡한 이야기는 됐고, 구청 건축허가과, 건설과, 환경위생과에 전화를 해봤는데 되는 가게라고 해. 계약할 때 등기부등본 잘 보고. 부동산 중개사 이상하니까 조심하고."


친구의 걱정을 뒤로하고 화를 참으며 고담덕 부동산으로 갔다. 데자뷔. 전화를 하며, 같은 자리에 앉으라 손짓한다. 그때와 다른 건 5분 정도 기다리니 서류를 챙겨서 왔다는 것.


"자 어제 말한 서류. 등기부 등본이랑 계약서. 먼저 도장 찍으면 내가 집주인한테 받을게. 그리고 장사되는 건 잘 알아봤지?"


이제는 자기도 열받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말을 더욱 짧아지고, 고압적으로 변했다. 서류를 잠시 살피고 있는데 내 정수리에 한 한마디가 내 뚜껑을 날려버렸다.


"나랑 잘 지내야 할걸. 내가 여기서 부동산 20년째야. 나한테 큰소리 내고 장사 잘한 사람 없다. 지금도 내가 많이 참고 있어. 그거 알아? 내가 한마디 하면 거기 손님 한 명도 안가."


서류를 보다 날아간 뚜껑을 찾으려 고개를 들었다. 내 뚜껑은 없다.


"저기요. 저 안 할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욕 안 한 게 다행이다. 문을 박차다시피 나왔다.


이거 실화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긴 한가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오니 전화가 왔다. 바로 고담덕 부동산 중개사다.


"저기 계약 안 할 거야?"


"네, 거기선 안 할 겁니다."


"내가 다 젊은 사람 잘되라고 한 거지, 뭘 그렇게 들어. 그러지 말고 계약해."


"아뇨 죄송한데 안 할 거니까요 전화 끊겠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그래도 내가 한 일이 있으니까, 부동산 중개료는 줘야 해. 내가 운전해서 가고, 집주인이랑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그거 법적으로 보호되는 거야. 그거 알지?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저기요 사장님. 무슨 소리세요. 부동산 중개를 안 했는데, 중개료라뇨.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화가 더 났다. 혹시 몰라 부동산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이번에는 헛웃음으로 답했다. 중개를 못했는데 중개료라니. 다른 곳에서 하라고 권했다. 그녀에게는 예의의 선도, 정도의 선도, 법의 선도 없었다. 오직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규칙인 듯했다. 두 번의 전화와 세 번의 문자가 왔다. 사정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문자로 말이다.


시작부터 어려웠다. 빌런도 이런 빌런이 있나 싶다. 슬로 버핏 200개로는 어림도 없다. 500개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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