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각자가 돌아갈 곳 #1

선 넘는 부동산 중개 업자 #1

by Starry Garden
고담덕 부동산 중개소


집에서 슬로 퍼핏을 200회 하고 나니 숨이 헐떡거렸다. 빌런도 내 머릿속에서 이제는 나갔다. 시원하게 씻고 앉아서 빌런이 꽂아 놓은 화살을 하나씩 뺐다. 후진 책장과 책 화살, 상권 분석 화살, 수준 화살, 서점 이름 화살, 정원 화살. 바닥에 쭉 늘어놓고 보니, 대단한 빌런이긴 했다. 화살 중 정원 화살을 들어 이리저리 보니, 계약하던 때가 생각난다. 가게 계약부터 소란스러웠다.


가게를 찾으려 네 번째 찾은 부동산은 '고담덕 부동산 중개소'


"안녕하세요. 가게 좀 보려고 왔는데요."라는 말을 하며 들어선 곳에는 풍채가 좋은 중년의 여성분이 계셨다. 부동산 중개소 안에는 장미 향으로 추정되는 향수 냄새가 강하게 내 코를 찔러댔다. 그녀는 나를 본채도 안 하곤 자신의 통화를 이어가며, 손짓으로 유리가 놓여있는 동그란 탁자에 앉으라 한다. 10분이 지났지만, 전화를 끊을 생각을 안 한다. '배짱 장사인가? 계약을 안 할 것처럼 생겼나.'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이제는 나가야지 하며 일어서서 가는데, 손짓으로 커피와 차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한잔 먹고 기다란다. 세상엔 참 무례한 사람이 많다.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박차고 나가려 하니, 이제야 휴대폰을 귀에서 떼곤 외친다.


"젊은 사람이 뭐가 그리 바빠? 나 중요한 통화하는 중이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우리 집 물건 많아요."


"아~ 예."라고 대답하고 갈길을 갔다. 그제야 손님이 아깝다고 생각한 걸까? 이제야 일어섰다.


"아휴 미안 중요한 통화 중이었어요. 들어와요 일단."


친구랑 통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면 일리리라. 그리고 남의 험담하는 일이 국가 대사라고 생각하시면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다시 들어갔다. 이미 일주일 동안 세 곳의 부동산중개소를 찾았고 일곱 개의 가게를 찾아다니니 지쳤다. 직접 커피를 주며, "무슨 가게를 하실 거야?"라고 묻는다. '난 사실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 커피를 안 먹는데' 내 의사 따윈 중요하지 않은 그녀였다.


"서점을 하려고 하거든요. 평수는 15평 내외요."


"응? 서점? 그게 장사가 되나?"


시작이 어긋나니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것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나 있긴 한데, 지금 가볼래요? 여기서 차로 5분 정도 걸려요." 오늘은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다짐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모닝에 몸을 실었다.


식자재 마트를 두 개를 지나 도착한 곳이 지금의 Starry garden이 있는 그곳이다. 가게는 비어 있었다.


내가 아직은 알 수 없었던 꽃과 나지막한 나무들이 정원의 자리 여기저기를 차지하고 있었다(나중엔 강제로? 학습하게 돼 무슨 나무인지, 무슨 꽃인지 다 알게 되지만). 정원은 단정했고, 가게 주위는 조용했다. 괜찮았다. '이 정도면 내가 본 곳 중에 제일이다'라 할 만큼 최고였다. 아주머니는 전화를 하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오늘은 내부를 못 보겠다고 했다. 집주인이 출타 중이라고 하신다.


"괜찮지? 근데, 카페도 아니고 서점은 뭐야? 카페를 해 카페를. 여기 근처에 제일 가까운 카페가 일 킬로는 가야 해. 카페가 딱이야."


나는 그 말에 대충 대답을 하곤 한번 둘러봤다. 볼 수록 괜찮았다.


"여기 좋네요. 언제쯤 내부를 볼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내일은 되어야 시간을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알겠다고 하며, 내일 시간이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하고 피곤한 몸을 다시 한번 모닝에 실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내가 원하는 말보다는 카페를 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 계속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5분만 참으면 벗어날 수 있다. 조금 참아야지'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부동산에 돌아와서 내 전화번호를 남기곤 집으로 가기 위해 소중한 '붕붕이'인 K3에 몸을 다시 한번 실었다.


내가 돌아갈 곳인 빌라가 즐비한 동네로 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선 넘는 부동산 중개사 #1


다음날 9시쯤 전화가 왔다. 어제의 부동산 투어가 고되었는지 아침이 와도 좀처럼 의식이 맑아지지 않았다. '지이잉 지이잉'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고는 덮으며 다시 의식이 멀어져 갔다. 그러가 갑자기 풍채가 좋은 중년의 여성이 떠올랐다. '아 부동산!' 하곤 다시 받았다.


"젊은 사람이 전화를 빨리빨리 받아야지. 1시간 뒤에 어제 본 가게로 올 수 있어요? 집주인이 나오신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럼요."


통화를 끊고는 다시 한번 의식이 멀어지는 걸 겨우 부여잡았다. 부여잡은 정신으로 재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가 잠이라는 녀석을 하수구로 쓸어 내 보냈다.


아침에 본 정원은 어제보다 더 반짝였다. '볼 수록 정이 간다.'라는 말이 속에서 맴돈다. 그 생각을 하며 있으니 장미 냄새와 함께 누군가 소란스럽게 온다. 마치 내가 당연히 늦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늦은 게 신경이 쓰였는지 요란하게 부동산 중개사가 왔다.


"일찍 왔네요. 곧 집주인 오신다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지만,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제의 그 향이 다시 한번 내 코를 찔렀다. 그 향수를 실수로 많이 뿌린 건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 정원을 본다는 핑계로 옆으로 비켜섰다. 다시 한 바퀴 볼까 하며, 가게를 한번 돌아 나왔다. 부동산 중개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집주인이라는 느낌이 왔다. 오랜 자취생활로 다섯 군데의 원룸을 전전하며 생긴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집주인' 알아보기다.


그는 머리의 대부분이 백발이고, 특이하게 뒤통수 가장 아래만이 검은색 띠를 둘러놓은 듯했다. 구레나룻을 따라 턱 전체를 감싸고 있는 풀 비어드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키는 나보다 약간 작았지만, 무척 다부졌다. 얼굴은 거친 세월을 살아온 훈장인 듯 곳곳에 깊게 파인 주름살이 보였다. 단정한 옷차림이 지금은 부드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내부를 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거친 삶을 산사람의 특유의 여유가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사를 표현하자 바로 문을 열어주셨다. 손짓으로 들어가보라하곤 자신은 밖에 머물러 계셨다.


'와 넓다. 창도 크고' 여기가 딱이라는 생각이 굳혀져 갔다. 그리고 건물 왼쪽 끝에는 에어컨이 하나 놓여있다. 창문이 잘 열리는지, 방충망은 튼튼한지 확인을 했다. 에너컨 반대편에는 뒷문이 있고 조그마한 싱크대가 하나 있다. 물은 잘 나오나, 물은 잘 내려가나, 수압은 괜찮은지 이리저리 확인했다. 열린 문으로 상체만을 보이시며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나요?"


"네 조그마한 서점을 하고 싶어서요. 넓고 무척 좋습니다. 그리고 정원도 마음에 들고요."


"그렇죠. 밤이 되면 섬처럼 홀로 빛날 때 더 멋있답니다. 더 보실 게 있을까요?"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며 나는 나왔다. 이제는 부동산 중개사와 이야기하라며 집주인은 바삐 가셨다.


부동산 중개사는 나를 보며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


"계약하실 거지?"


이제는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반말로 하기를 다짐하셨는지 빨리 가자고 성화다. 가게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참고 갔다. 자신의 어항에 있는 물고기에게 지킬 선 따윈 없었나 보다.


그녀는 이제 선을 마구 넘어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