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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마음의 치료제

빌런 등장!

by Starry Garden
빌런 등장!


가게 주인이 되고 나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점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채로운 손님이 오겠지만, 지난 6개월간 가장 기억에 남은 손님은 '영업하러 온 사장님의 탈을 쓴 빌런'이었다. 일단 들어올 때는 몰랐다. 평범한 손님과 같은 시작이었다. 손님을 알리는 딸랑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이상한 사람이 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표시하고 오면 좋겠지만, 그분들은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 따윈 주지 않는다.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천천히 온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들어낸다. 그렇다. 시작은 평범한 손님과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내 뽐내셨다. 아주 짧게 가게를 둘러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책을 본다기보다는 서점 전체를 쓱 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책장은 어디서 사신 거예요? 그리고 책은 누가 선택하신 거예요?"


일단 자신의 말을 기관총처럼 빠른 속도로 내질렀다. 그녀는 내 대답을 원한 건 아니리라.


"책장 색이 너무 후지지 않나요?, 그리고 책은 신간도 아니고 독립출판 전문도 아니고 뭘 중점으로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후지다'는 말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그녀는 뛰어난 '진상 야수'다. 공격은 짧았지만 강력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걸 파악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한방을 성공적으로 먹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위치도 이게 뭔가요? 사람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상권 분석은 하신 거예요? 정신이 있는 건지.. 쯧쯧"


이번 공격에 내 경동맥을 자를 정도로 예리했다. 아마 내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으리라. 나도 이제는 약한 사장이 아니라, 공격에 맞서는 강한 사장 모드로 변신하는 과정이 표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변신할 때 공격하는 건 악당의 자세가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라'라는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공격 발톱을 준비하려는 찰나. 그녀는 노련한 야수였다.


"혹시, 서울 성수동 '**서점'이라고 아세요?"


야수는 공격이 아니라 이제는 질문을 던져 내 공격 순간을 흐려 놓았다. '성수동 어디? 모르겠는데.'


"아뇨 모르겠습니다."라고 아주 건조하며 딱딱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그녀는 내 공격 순간을 앗아가곤 다시 즉각 공격을 개시했다.


"네? 그 유명한 가게를 모르신다고요? 다른 가게도 안 가보시고 서점을 차리신 거예요? 그러니까 수준이 이렇지. 제 딸이 그 가게 운영하거든요. 요즘 수도권 작은 서점들은 다 와서 구경하고 가는데. 역시 모르니까 수준이 떨어지지요."


그녀의 공격에는 거침이 없었고 빈틈이 없었다. 이런 막말을 평온하게 하는 분들은 드라마나 영화에나 있는 줄 알았다. 내 표정은 완전히 구겨지는 것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수준을 높이시려면 우리 딸 가게에 와보세요. 그리고 책도 우리 딸 가게에서 목록 받아서 넣으시고요. 흉내라도 내셔야 수준이 올라가시죠." 하며 명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명함은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깔끔한 폰트로 **서점과 주소가 적혀있고, 그 아래에는 전화번호와 인스타그램이 나와있었다.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명함을 받아 들고 이제야 내 할 말을 하리라는 결심으로 입을 떼려는 순간, 그녀는 도도히 떠나갈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이게 다 서점을 살리려고 하는 일이에요. 고깝게 듣지 말고 꼭 가보세요."


그렇게 물 흐르듯 마지막 공격을 하곤 점점 멀어져 갔다. '안된다. 내가 한 번이라도 공격을 해야 한다!' 시도하려 하는 순간 이게 진정한 마지막 공격이라며 나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우리 딸 가게처럼 입에 착 붙는 가게 이름을 해야지 Starry.. 뭐야 가게 이름도 바꿀 생각 하세요. 생각이 있으면. 또 정원은 뭐야 벌레만 있고 이런 거 없애고 주차장을 만들던지 해야지. 돈이 없으려나?" 그렇게 나는 완전히 녹다운되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료제


그분은 영업을 하러 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딸을 자랑하고 싶어서 온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그저 풀고 싶어서 온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무자비하게 주는 기술을 가다듬으려 먹잇감을 찾는 본능에서 온 것일까?


찾을 수도 없는 답을 찾으려 이리저리 생각이 뛰어다녔다. 내 마음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 말이다. 그 마음을 보고 있자니,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독 묻은 화살을 맞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왔다. 황급히 독화살을 빼고 해독을 하려 했으나, 그 사람은 의사의 손을 막아섰다.

"화살을 뽑아선 안됩니다. 우선 화살을 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화살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야 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화살을 뽑는 순간 망가져 범인을 찾는 건 어려울 겁니다."

의사는 그래도 조치를 하려 하자,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화살을 이리저리 보다 결국 독이 온몸에 퍼져 죽고 말았다.


나는 상처를 해결하는 것보다 화살은 누가 만들었는지, 왜 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결국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을 하고 있었다. 독이 점점 몸에 퍼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화살을 빼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을 하고 가장 먼저 한건 가만히 명상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었다. 명상은 긴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찾은 내 마음의 치료 방법이었다. 몸은 망가져갔고, 마음의 상처가 자주 덧나 아물길 반복한 그 시기에 명상을 알게 되었다. 그 시기에 배운 명상은 평생에 걸쳐 있을 수밖에 없는 상처를 피하진 못하더라도 빨리 마음을 챙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선 응급처치인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응급 처치로 마음이 고요해지니 치료제인 책을 찾았다.


<회복탄력성>, <친애하는 브라우니 씨>, <차초초>.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책과 현실을 잠시 벗어나게 하는 동화 같은 소설들이다.


<회복탄력성>은 마음의 힘이 유독 강하신 분들의 이유를 알려준다. 사고로 몸은 다쳤지만 희망을 전하시거나, 시력을 잃었으나 판사가 된다거나, 태어날 때 심장이 아팠으나 의사가 되신 분들이 바로 마음이 강하신 분들이다. 그들은 튼튼한 마음 근육으로 무거운 상황을 너끈히 들어낸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뚝 서는 마음의 힘이 있음을 알린다.


회복탄력성의 근간은 '자기 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다. 이들이 내 마음의 힘을 키우는데, 실질적으로 이 둘을 키우는 방법은 '감사하기'와 '운동'이다. 감사한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에서의 긍정 회로는 빠르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이를 실체화하기 위해 '감사 일기'를 작성한다. 실체화된 글은 내가 꽤나 괜찮은 환경에서 꽤나 선방하며 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운동은 신체와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운동이 뇌 안의 혈액 순환을 향상시켜 스트레스는 떨어지고, 사고 능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이 둘이 신비로운 마음 근육 키우기가 전혀 신비롭지 않음을 알려준다. 바로 옥스퍼드 패드를 꺼내 감사 일기 한 줄을 적는다.


'그녀보다 강한 빌런은 없으리라. 예방 주사를 맞고 세게 앓았다. 이제는 어떤 빌런에도 능숙하게 대하는 경험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감사하다.'


그리곤 퇴근하면 버핏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마음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곤 두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다. 이 현실에서 잠시라도 떠나고 싶었다. <친애하는 브라우니 씨>는 아기자기한 곰인형이 표지에 앉아있다. 브라우니 씨는 날카로운 말을 막아내는 갑옷과 내 표정을 숨기는 답답한 가면을 내려두게 한다. 오늘은 효과적으로 그 공격을 막아내진 못했지만. 신비러운 영물인 브라우니 씨는 나와 같은 책방 주인으로 다른 영물인 호랑이 형제, 닭, 뱀이 입은 상처들은 가만히 봐주곤 다독인다. 책에 있던 브라우니 씨가 이제는 나를 다독인다.


마지막으로 든 책은 내 동생이 강력히 추천했던 <차초초>다. 짧은 책에 두 개의 소설이 담겨있다. 스토리가 있을까 싶지만, 두 개의 이야기가 책의 온기를 느껴지게 한다. 기억을 '덮어쓰기' 해주는 상점 이야기인 <주파수 49.91>과 내가 힘들 때 숨어들어 회복할 때까지 있을 수 있는 집에 관한 이야기인 <십삼월>이다.


치료제는 내게 닥친 일은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해며, 내 마음 근육을 조금 써 너끈히 넘겼다. 그리고 현실을 벗어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차가워진 마음을 다시금 따뜻하게 했다. 치료제는 제 역할을 하나보다, 멍하니 앉아 있지 않고 청소를 시작하며 몸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마디는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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