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내뿜는 천연항생물질' 북톤치드'
'북톤치드'를 할 수 있는 독립서점. 바다숲책방.
주말. 시간 틈이 났다. 여자친구는 약속까지 1시간 여유가 생겼다. 요즘은 시간이 뜨면, 하는 일이 있다. 지도를 펴고 가장 가까운 독립서점을 찾는 일이다. 이번에 레이더에 걸린 장소는 바로 <바다숲책방>이다.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는 곳. 안내에 따라갔다.
독립서점은 지하. 주차도 지하. 어리둥절하며 길을 찾았다. 토요일. 비도 내리고, 추운 탓일까? 매장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갔지만, 한산했다. 휴대전화를 보며 따라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서점이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맞이했다. 빛을 따라가니 책들이 반긴다. 따스한 목소리도 함께 건너왔다. 독립출판, 기성출판이 서로의 자리를 잡고 있다. 특별하다고 할까? 중고책 부문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산책을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여자친구의 걸음으로 책들을 살폈고, 난 독립 서점 코너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책이 뿜는 힘이 몸을 감 쌓다. 피톤치드. 아니, 북톤치드가 시작되었다.
피톤치드는 나무나 몇몇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대응하기 위해 뿜어내는 물질이라고 한다. 1937년 생화학자 토킨이 이름 붙였다. 피톤치드는 면역력을 높인다고 한다. 나무가 가득한 숲을 거닐다 보면 상쾌해지는 기분. 삼림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닌가 보다. 책은 한 그루의 나무다.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숲이다.
목적 없이 거닐었다. 함께 간 여자친구와는 떨어졌다. 몇 권의 책을 뒤적거렸다. 멈췄다. 나와 비슷한 모양의 나무가 보였다. <서른다섯, 직업을 바꿨습니다>. 몇 장을 넘기기 전 손에 꼭 쥐었다. 비슷한 처지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다시 걸었다.
블라이드 북. 어떤 책인지 모른다. 오직 서점지기의 설명에 의지한다. 파란색 바다를 품고 있는 듯 한 포장. 정성이 담긴 종이에는 "언제 결혼하냐, 애는 언제 낳냐, 학교는 어디 갔냐.. 등 시대착오적인 참견을 참기 힘들었던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사이다. 울고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에세이." 마음이 쿵. 손에 쥐었다.
꼭 들고 가야 할 두 그루. 화분에 담았다. 두 권의 책을 손에 쥐었다.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여자친구는 시계를 톡톡 치며 환하게 웃는다. 책을 곱게 여기는 이는 서로를 알아본다. 서점지기의 은은한 미소. 책갈피를 주셨다. 감사하다며 받아 들었다. 머뭇거리셨다. 책을 챙기고 가려니, 서점지기가 안경을 끼고 있는 우리를 보며 안경닦이를 전하셨다.
손에는 책이라는 화분이, 안경닦이라는 정이 들렸다. 북톤치드를 가득하고 아니 마음이 가볍다. 발걸음에는 신이 났다. 면역력이 높아졌다. 언제든 가야겠다. 시간을 내어 가야겠다. 다음에는 산책을 조금 더 길게 하고 싶다. 기회가 닿는다면, 숲을 관리하는 서점지기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북톤치드가 필요한 날 방문하고 싶은 <바다숲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