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문고> 마지막 독서모임. 평소와 다름없다. 1년 동안 내공 덕분이다. 공교롭다. 커피문고가 문 닫는 날, 책 친구 한 명이 퇴사를 한다. 끝도 시작도 있으니, 그들은 아마 생각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우선 쉰다는 말이 가장 처음 나왔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을 만난다고도 한다. 쉰다고 하지만, 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니다. 바쁘다.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라 그런 걸까? 휴식의 기안도 딱 정해져 있다. 우연이다. 둘 다 2 달이라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줬다. 조금 긴 휴가인 모양이다. 다음을 걱정한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한 모양이다. 선뜻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한 이유도 한 조각내어 놓았다.
"왜?"
끝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시작에도 이유가 있어야 할까? 우린 참 자주 묻는다. 그걸 왜 하냐고. 마뜩지 않은 답을 내어 놓으면, 어색한 웃음으로 돌려준다. 때로는 그러면 안 되다며 윽박지르는 이들도 있다. 새롭다는 말은 낯설다와 가깝다. 낯설다는 불안과 맞닿아있다. 안 그래도 불안이 달랑거리는데, 왜라는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왜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게 있다. 하나는 직관. 다른 하나는 조지 맬러리의 말. 조지 맬러리는 영국 산악인이다. 에베레스트를 정복에 도전했고, 산에서 오랜 잠을 들었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했던 말 덕분이다. 산을 왜 등반하냐는 말에 "산이 거기에 있기에"라도 답했다고 한다.
왜 산을 등반하냐는 말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내어 놓지 않았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 특별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이 답을 한 단어로 눌러볼까? '그냥'이 된다. 우린 모든 일에 신묘한 이야기가 필요할까? 물 샐 틈 없는 논리로 무장을 해야 할까? 무슨 일이 그런 경우가 있을까? 계획서를 쓰고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 일도 아는데 말이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 특히 가까이이지 않은 이들은 요구한다. 그냥이라는 말은 이상하고, 숨긴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만의 간단한 이유를 말하면, 빈틈을 찾아내 공격한다. 마치 실패하라는 주문 같다. 조지 맬러리 말처럼.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그냥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는 직관이 작용한다 본다.
직관. 한 분야에 오랜 시간 경험이 있는 이들이 부리는 초능력이다. 화재 현장에 진입한다. 노련한 소방관이 현장을 보며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무슨 일이 곧 벌어진다. 물을 뿌리기를 멈추고, 대원들에게 나오라 소리친다. 무너진다. <인튜이션>이라는 책에 나오는 예시다. 무엇일까? 뇌가 엄청난 정보를 처리한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내어 놓는다. "이상하다!" "위험하다!" 이유의 논리를 뒤로 밀린다. 우선 살아야 하니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소방만 그럴까? 아니다. 환경공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는 선배님이 있다. 하수처리장 문제가 있어 가셔서 휙 둘러보신다. 숫자로 된 데이터도, 관리자의 이야기도 듣기 전이다. 문제가 된 하수를 보고, 문제를 탁 지적한다. 그런 다음에야 숫자를 보고, 관리자를 만난다. 무엇일까? 초능력처럼 보이는 직관의 영역으로 보인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직관이라는 녀석이 본능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소리치는 건 아닐까? 황보름 작가의 <난생처음 킥복싱>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가면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미 그 '뭔가'를 잘 해낼 재능이 내 안에 있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안에 재능이 없다면 그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뿐더러 그 '뭔가'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런 말은 가슴을 뛰게 한다." (page 66)
살아가면서 뭔가 하고 싶다면, 나도 알지 못한 깊은 곳에 숨겨진 재능 아닐까? 아니면직관이라는 녀석이 후드득 계산을 한 뒤, 과정을 생략하고 내게 보여준 건 아닐까? 이유는 나중에 찾으면 되는 일 아닐까?
책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배시시 웃었다. 긴 이야기를 할까 하다 말았다. 꼰대 같기도 하고, 정리가 잘 안 되었다.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긴 이야기는 접어두고 짧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