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현실판.
대학원생은 절대로 고고하지 않습니다.
6년. 대학원생 기간이다. 환경에너지공학을 전공했다. 세부전공은 물 처리다. 더 잘게 나눠보면, 하수와 폐수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 미생물을 이용해 처리했고, 화학물질을 사용해 정화했다. 혹시 모습을 상상하면 어떤가? 어렵다면 넓게 보자. 연구자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새하얀 실험복을 입고, 장갑을 낀다. 깨끗하게 정리된 실험실. 정돈된 기기를 이용한 모습. 군더더기 없는 동선에 따라 실험을 한다.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쓴다. 실적은 쌓이다. 멋지게 입고 발표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따라 실험 결과를 내어 놓는다. 질의응답을 한다. 알아채지 못한 부분을 짚어 낸다.
이런 모습은 없다.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용이나 유니콘이다. 상상 속 동물 같다. 대학원생 현실판. 환경에너지공학 한정으로 말씀드려볼까? 좁은 경험이지만, 화학공학이나, 생물공학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수와 폐수를 가져온다. 하수는 더럽다. 우리가 변기에서 내린 물. 우리가 샤워를 하고 보낸 물. 우리가 설거지를 하고 보낸 물이다. 온갖 부유물들이 섞여있다. 건더기는 벌레들 만찬장이다. 윙윙 거린다. 이제 실험 시작. 아무리 조심해도 튄다. 태생이 하얀 실험복은 어느새 거뭇거뭇한 작업복이 된다.
폐수는 어떤가? 독한 물질이 물에 진하게 녹아있다. 비장하게 장비를 찬다. 눈이 시큰거린다. 코가 찡하다. 화학약품을 신경 써 계량하고 넣는다. 열이 나기도 한다. 처리를 위해 폭기를 한다. 튄다. 내 방호복인 실험복이 버티지 못한다. 실험이 끝나고 나면 실험복은 물론 바지도 구멍이 나기 일쑤다.
결과는 보통 엉망이다. 안다. 실험 성공은 이례적이고, 실패는 일상이다. 미팅은 내주 돌아온다. 실패를 들고 간다. 결과에 해석을 덕지덕지 붙인다. 날카로운 교수님의 눈빛에 설명들은 날아간다. 미팅 끝에 마음을 조아리고 다음 실험을 기대한다.
하수와 폐수를 정화하는 미생물은 주말도 휴일도 없다. 그들에게 밥을 줘야 하고, 자는 곳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매일 확인해야 한다. 미생물에게 달력을 주며 쉬고 싶지만, 어림도 없다. 미생물은 속 좁은 이들이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꼭 문제를 일으킨다. 어떤 날을 물이 실험실 바닥을 흥건히 남긴다. 돌아야 하는 기기는 멈춰있다. 활성 따위는 없다. 다 죽어있다. 내가 드린 시간은 1도 남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논문은 어떤가? 한글로 써도 힘든 글을 영어로 써야 한다. 더디다. 아니, 제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우 써낸 논문을 투고한다. 뻥. 바로 발로 차서 다시 내가 돌아온다. 아쉽지만 우리와 맞지 않다는 기계적인 답이다. 마음이 뭉그러진다. 될 때까지 써야 한다. 집에 가는 일은 뒤로 자꾸 밀린다.
현실판 대학원생. 눈이 퀭하다. 입고 있는 실험복에는 구멍이 있고, 더럽다. 실험실은 언제나 어지럽다. 깨끗이 치워도 늘 그렇다. 내 마음처럼 지저분하다. 하루를 견디며 사니, 치우는 일도 버겁다. 그들의 뒷모습에는 무거운 무건가가 지워져 있다. 쉬는 날도 없다. 매일 나간다.
취미도, 자신도 지워내야 연구가 완성된다. 시간이 오래 지낼수록 끝없는 터널에 머물 뿐이다. 6년 동안 했다. 현실을 안다는 게 꼭 좋은 일인가 싶다. 난 몰랐으니 했다. 떠올랐다. 선배들이 대학원 실현을 알려줬다. 자기 객관화가 안된 거다. 난 다르리라 생각했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힘든 일이다. 대학원생은 고고하지 않다. 힘든 일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연구로 밝히는 일이니 힘든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제가 그린 현실판과 다른 실험실도 있을 테다. 아닌 대학원도 있을 테다. 힘든 대학원생활 중에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대학원생에게는 당신보다 힘든 이들도 버텨 냈다는 용기를. 대학원생이 아닌 분에게는 대학원생을 응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심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