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출렁거린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소설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거사 준비부터 의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그는 영웅이다. 비범한 일을 했다. 그도 인간이고, 그도 떨렸다. 흔들리신다. 사실과 빈틈을 메운 허구가 단단한 이야기에 빠졌다.
안중근 의사의 마음이 응축된 문장이 있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page 159)"
목숨을 던진 그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한 뼘의 흔들림도 없는 영웅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그도 실패가 두려우셨다.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한 조각 있다. 흔들린다. 총구를 고정시켜 목적을 위해 달려가지만, 총을 쥔 내가 사람이니 흔들린다. 살아있으니 숨 쉬고, 숨을 쉬니 흔들린다.
영웅이라 칭송받는 그분도 흔들린다. 하물며 나는? 흔들릴 때마다 난 나를 다그쳤다. 흔들리지 말고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게을러지면 자책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할 일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노력이 부족하다고 나를 채찍질했다. 그리고도 안 되면,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비교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이루고자 한 목표를 이룬 분들을 봤다. 못하면 다 핑계 같았다.
안중근 의사의 말씀에 와르르 무너졌다. 실패를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큰 제방에 틈이 만들어지더니, 무언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심장박동기를 본 적이 있을까? 의학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기기다. 환자의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긴다. 삑 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다 드라마는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위기가 왔음을 알려준다. 멈춤. 죽음. 주인공의 신묘한 방법으로 환자는 이윽고 일어나고, 다시 심장박동기에는 주기적인 삑삑 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박동. 끊임없이 흔들린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외치며 삑삑 거린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흔들리는 속성을 가진 일일까? 흔들리여만, 심장이 뛰는 한, 흔들리는 일이 당연한 인간. 흔들린다. 불안하다. 그런 나는 이상한 사람도 의지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라, 지극히 정상인 인간임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보인다. "삑삑"
정신력으로, 신념으로, 각오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는 강한 정신력을 가졌지만, 나라를 구하는 견고한 신념을 가졌지만, 위험한 일에 자신을 투신한 강고한 각오를 가졌지만, 그도 흔들렸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흔들리지 않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총을 쥔 내가 사람이기에, 살아있으니 심장이 뛰고 있으니 흔들리는 나이기에.
흔들리는 난 당연하다. 특별한 일도 아니고, 지극히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나는 작은 일에도 쉬이 부서지는 정신력을, 언제든 구부러지는 신념을, 언제든 바스스 부서지는 각오를 가진 평범하기 이를 때 없는 인간일 뿐이다.
"마음을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목표를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마음은 늘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