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을 좋아한다. 장인이라고 할만한 분들의 연기, 마음에 닿는 대사, 수려한 연출, 빠져드는 배경까지. 거기다, 글을 쓰고는 대사를 주의 깊게 듣는다. 이름난 대사들을 받아 적어둔다. <미스터 선샤인>은 특히 많다.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다. 김희성의 대사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9회)
그의 대사에 난 낮게 읊조리며 답한다.
'나도 그러하오.'
난 글을 쓴다. 예나 지금이나 글 쓰는 사람은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는 일이 종종 있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인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빠르게 뒤쳐지기 좋은 사람이라며, 주홍글씨를 새긴다. 글 쓰는 일은 쓸데 하나 없는 일이며 자연을 파괴하는 민폐를 끼치는 일 이라며 험한 말을 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무용하다"한다. 그런 건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들의 논리에 혹시 난 "따로 있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면, 입을 틀어막는다. "넌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무용하다고 하는 걸까? 정말 무용하다 하더라도, 하면 안 되는 일일까?
나 같은 생각은 과거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장자 내편> 소요유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혜자라는 분이 장자와 대화에서 나무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혜자 집에 큰 나무가 있다. 울퉁불퉁하고 잔가지 많다. 거기다 굽어 있으니 쓸데가 없다고 불평했다. 목수들도 거들떠보지 없는 나무. 장자는 답했다. 도끼를 찍히거나 해를 당할 일도 없는데, 나무가 쓸모없다고 어찌 괴로워한단 말인가? 쓸모없음의 쓸모. 말장난 같지만, 글을 쓸 때마다 불쑥 떠오른다.
국가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이들은 필요 없다고 하는 이들의 생각도 맞는 말이다. 그래도 누가 알까? 그렇게 무용하게 한 일이 크게 유용하게 쓰일 일이 있을지. 문화의 한 축이 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렇게 특이한 사람으로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 생각의 큰 변화가 올 때 쓰임이 있을지 않을까?
쓸모없음의 쓸모가 가장 극적인 분야가 과학 연구다. 특히 기초 연구. 기초 연구는 즉각적인 생산력 향상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용해 보인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인류의 지대한 변화를 이끈 연구는 수많은 기초 연구라는 씨를 뿌린 결과다. 어쩌다 해본,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가 뒷 날 크게 쓰이는 경우는 잦다. 국가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기초 연구라고 버려야 할까? 절대. 절대 아니다. 가능성에 기대 그들을 보호해야 하고 키워야 한다. 필요 없음을 우리는 지금 당장 판단한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무용한 일도 그러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일이 무용한 일이라 하더라도, 김희성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난 무용한 걸 좋아하오. 글쓰기, 글씨 쓰기, 필사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쓰고, 읽으며 살고 싶소. 무용하다 하더라도 무용한 것 자체로 적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소이다. 결국 무용하면 어떻소. 가능성을 품고 있어 봤으니 된 것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