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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슈퍼 컴퓨터 두뇌, 설날 어머니가 바로 정총무다.

"어머니,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by Starry Garden
슈퍼 컴퓨터 두뇌, 설날 어머니가 바로 정총무다.


어머니께서 상품권을 받으셨다. 20만 원. 어머니는 장을 봐야 한다면, 동생과 나를 재촉하셨다. 돈의 크기만큼, 장의 무게가 크다고 예상하신 모양이다. 어머니 손에 들린 종이에는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가까운 하나로 마트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비장한 각오로 내려갔다. 평소에 커 보이던 카트는 작았다. 하나 둘, 어머니의 지도아래 동선 엉킴 없이 나아갔다. 이번도 가족이 먹고 싶은 메뉴만 하겠다며 주문을 받으셨다. 만두, 동그랑땡, 식혜, 잡채. 생선도, 돼지고기도 실렸다. 쌀도 엿기름도 담겼다. 카트가 묵직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도토리 묵을 보시더니, 먹겠냐는 질문에 동생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먼저 가시고, 나와 동생이 뒤 따랐다. 메밀묵이 보였다. 도토리 묵보다 3,500원 비쌌다. 동생과 눈빛을 교환하곤 바꿨다. 저만치 앞에 걸어가는 어머니. 장보기가 끝났다. 한가한 계산대로 줄을 섰다.


레일에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을 날카롭게 보신다. 삑삑 거리는 소리를 지나 결제 금액이 높아진다. 삑삑. 동생과 나는 멍하니 보며 담았다. 줄어든 만큼 늘어나는 가격을 보다 멈칫했다. 20만 원에 다다른다. 엇! 어머니가 받으신 상품권의 가격 20만 원에 조금 넘었다.


어머니께서 흐뭇한 웃음을 짓다. 우리에게 묻는다.


"다른 거 산거 있니?"


나와 동생은 입을 연 채로 답했다. 도토리 묵을 메밀묵으로 바꿨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나머지 물건을 담으셨다. 어머니는 장을 보는 와중에 계산을 다 하신 모양이다.


종영한 <무한도전>이 떠올랐다. 전자두뇌 "정총무" 정총무는 혼란스럽게 오가는 물건을 눈으로 쓱 본다. 곁에서 보는 동료들은 계산이 되고 있는지 의심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린다. 거의 정확하게 결제 금액을 맞춰낸다.


제목 없음.png (출처: 오분순삭)


부모님 능력에 화들짝 놀란다. 어머니는 계산을 하신 모양이다. 우린 생각보다 부모님을 모른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참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커 가느라 몰랐고, 자라고 나니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다. 함께 해야만 안다. 대화를 나눠야만 알 수 있다. 부모님에게 말할 기회를, 우리는 경청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머리에 집어넣으신 모양이다. 모든 것을 계획한 어머니. 어머니의 능력에 놀란다. 초능력자처럼 통제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를 존경하는 또 다른 장면이 머리에 새겨진다.


"어머니는 계획이 있으셨군요?"


내 말에 피식 웃으셨다. 동생과 나는 방법을 여쭤봤다. 어머니는 웃으며 이론을 설파하신다. 동생과 난 오랜만에 어머니의 말에 쏙 빠졌다. 설날 장보기의 최대의 수확이다. 어머니의 즐거운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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