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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Feb 21. 2024

노력하지 않은 걸로 해요. 우리.

노력을 했지만 안 된 거면 슬프니까요.

노력하지 않은 걸로 해요. 우리.


  노력만 한다. 이때 주목해야 할 단어는 '만'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머리가 좋지도,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학생이라는 협소한 이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생각했다. 거기다, 용기가 없으니 정해진 길로만 다녔다. 성과가 나지 않았지만, 하고 있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각하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 한번 빠지지 않았다. 


  모범생이라 칭찬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용기가 작은 애매한 학생 정도는 아닐까? 노력하기도 하고, 노력하는 척하며 지냈다. 학생 이름 뒤에 숨어 살았다. 새로운 도전이 두려웠다. 학생 기간이 길었다. 4년이라는 대학 생활을 끝내고도 무서웠다.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물론 연구하는 일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대학원으로 피한다는 마음 한 조각이 없다고 할 수 없다(문장을 짧고 명징하게 해야 되지만, 지금도 그 사실을 말하기는 두려운 모양이다). 한 줌의 성과를 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했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엄격하신 교수님의 지도.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선배님. 착한 마음을 기잔 동기와 후배. 어느 하나 내가 낸 성과는 없다. 그 자리에 나 아닌 다른 이가 있었더라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 좋은 사람만 있는 그 자리는 축복이기에 성과에 내 이름이 오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가끔 노력했고, 대체로 노력하는 척을 했다. 



  실패가 두렵다. 증명하지 못해 낙오할까 겁이 났다. 안다. 능력에 따라 내는 것이니,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욕심. 쉽게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일까? 난,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난,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참 멋지다. 그들을 동경하며, 난 조금 작아진다. 


  일의 성패는 인간에 달린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중국에서는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으며, 성경 잠언에는 주사위는 내가 던지지만 결정은 야훼께서 하신다니. 그래도 일을 하는 일도, 주사위를 던지는 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긴 있지 않은가?


  엄격하게 보면, 자주 노력하는 척을 하고, 가끔 노력하며 산다. 무언가 이루지 못하지만, 노력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갑작스럽게 실패를 만나고, 일이 잘 안 될 때 되뇌는 말이 있다. 가끔은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휙' 던지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예전에는 아니라 우겼다.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아니다. 맞다고 한다. 채찍이 되고, 던진 말에 맞기도 한다. 인정한다. 나는 안다. 모두를 속이더라도, 나만은 안다. 노력하는 척을 했다. 이제는 이유 하나가 더해졌다. 노력했는데,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환경도 조건도 탓할 수 없는데, 탓할 것도 하나 없는데, 실패했다면 슬프니까.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될까 무섭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노력하지 않은 탓으로 하는 일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노력하기도 하고, 노력하는 척하기도 하는 오늘. 실패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곁에서 함께 힘들어하는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말해야겠다.


  "노력하지 않은 걸로 해요. 우리."


  위로는 되지 않더라도, 나를 손상시키지는 않을 수 있다고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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