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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r 08. 2024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경주가 아련한 이유.

나를 변화하지 않은 경주에 적고 옵니다.

고즈넉한 경주에 가고 싶은 이유.


  경주. 아련하다.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다. 친구가 살지도, 친척 한 분도 없는 나와는 무관한 곳이다. 경주만 생각하면 그윽하게 추억을 떠올린다. 가본 일도 몇 번 없다. 한 번은 학교에서 단체, 다른 한 번은 차를 몰고 떠난 여행.


  소풍인지, 수학여행인지 모르겠다. 사진을 찾으려 한참 헤맸지만 없다. 기억만 더듬어 보면 버스 몇 대로 우르르 내려 첨성대를 갔고,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국사를 갔다. 동궁과 월지. 안압지까지. 고색창연한 문화재는 배경일뿐, 친구들과 낯선 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소풍 막바지에는 급하게 효자 코스프레 한다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렸다. 아마도 참 쓸데없는 것을 샀으리라. 문 앞에 의미 없이 걸리는 나무조각 정도? 지쳤는지 돌아오던 차에서는 다들 자느라 정신없었던 소풍이 첫 번째 기억이다.


  두 번째는 크다 못해 나이가 들어가고 나서 가게 되었다. 특별한 뜻은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유홍준 선생님께서 쓰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을 읽고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간 곳은 전과는 천천히 거닐었다. 


  동궁과 월지의 조명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시렸고, 북적거렸던 첨성대는 외롭게 홀로 우뚝 서있었다. 불국사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다보탑과 석가탐이 자리한 곳은 좁았다. 이름 하나 붙어 있지 않은 릉을 곁에 두고 걷고, 요즘 인기라는 황리단길을 배회했다. 



  시선을 방해하는 건물이 없는 카페에 가 음료를 한잔 마시며, 왜 이곳을 가고 싶은지 이유를 더듬거렸다. 무슨 이유가 있으랴. 아련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 그냥 그런 여행을 했다. 별 다른 일 없이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글을 쓴 지금도 보고 싶다. 경주의 마지막은 3년 이 훌쩍 넘었다 다. 요즘 다시 아무런 연결 고리 하나 없는 그곳이 아련하다. 두 번의 경주 여행과 다른 건, 지금 내가 나이가 조금 더 먹었다는 사실과 사색을 하고 적어내는 글쓰기를 한다는 점.


  왜?라는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생각했다. 왜? 그곳은 내게 그리운 곳일까? 막상 가면 생각보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왜 그리워할까? 질문에 질문을 더했다. 짤막한 문장이 턱 하고 떨어졌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을 곳에 내 추억을 붙여 놓고 싶어서. 언제든 흘러간 나를 찾아오고 싶어서."


  경주는 온갖 규제로 범벅이 되어 있으리라. 농담으로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천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수도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덕분에 경주는 변화하지 않는다. 학생일 때 간 경주나, 4년 전에 간 경주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지금 그곳에 가더라도 변화하지 않고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으리라. 10년 뒤에도 그러지 않을까?라는 믿음이 남아있다. 그래서 아련하다. 바뀌지 않은 그곳에 내 추억 한 조각 남겨두면 시간이 흐른 뒤에 오더라도 여전히 있으리라는 믿음. 믿음이 아련하게 한다. 지금 가도 난 그곳에 남겨둔 학창시설의 추억, 마음이 번다한 나의 모습 조각을 있으리라. 생각해 보니, 옛날 내가 아련했던 모양이다. 


  경주. 아련하다.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다. 친구가 살지도, 친척 한 분도 없는 곳. 그곳 경주에는 어렸던 내가 살고 있고 3년 전 내가 지내고 있다. 경주만을 생각하면 그윽한 눈으로 보게 되리라. 시간을 내고 싶다. 지난 시설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기록하러 가야겠다. 또 시간이 흐른 뒤 변함없이 있는 경주를 찾아 나를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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