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내 일상을 찾아 조급함을 내려놓습니다.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을 하고 난 뒤, 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다. 가끔 주말에 서울을 갈 때 버스를 탄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시는 분들은 끔찍하다 하실지 모르겠다. 쫓길 것 없는 주말. 버스는 꽤 괜찮다. 운전은 전방 주시가 중요하다. 옆을 볼 여유가 없다. 버스는 다르다. 흘러가는 풍경을 보니, 여행 가는 기분이 난다.
고속도로를 들어가는 입구에는 차가 가다 서길 반복한다. 서로가 서로의 차선을 지키기도, 빨리 가고자 하는 욕망이 차선을 바꾸기도 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고속도로로 향한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지난다. 경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돈이 남아있다는 하이패스의 짤막한 소리. 이내 속도를 낸다. 버스 전용차로에 들어가면 빠르게 달려간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를 본다.
버스전용 차로를 내달리는 차 안.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가는 차 안. 마음이 상쾌하다. 한참을 가다 서울에 진입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짧은 버스로 떠나는 여행이 끝나고 다음 정류장을 알려준다. 목적지에 다다른다.
네이버지도를 보며, 방향을 정하고 큰길을 따라 걷는다. 생각은 아직도 버스에 있는 듯 설렌다.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안하게 온 덕분일까? 평온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뗀다. 버스를 타면 하는 상상이 있다. 언젠가 할 수 있을까 싶은 대사. 드라마에서는 클리쉐처럼 나오는 대사.
"지금 가장 빠른 버스표를 아무거나 주세요."
주인공이 꼭 이런 대사를 하고는 훌쩍 떠난다. 마음을 무겁게 하던 문제에서 잠시 벗어난다. 어떤 주인공은 답을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주인공은 겪고 있던 문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문제를 안아 오기도 한다.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고 하지만, 닿는 부분이 있다. 나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는 건 아닐까? 거창하지만, 삶을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건 아닐까?
"지금 막 삶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가장 빨리 출발하는 버스표 주세요."
우린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버스를 타고 간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일 수 있고, 어떤 날은 버스 전용차로를 타고 빨리 가는 날도 있으리라. 버스를 탈 수 있는 일은 내가 선택했지만, 버스 속도는 내가 정할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이, 운이 속도를 좌우한다.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조급하다. 버스 기사처럼 앞만을 보고 간다. 조급한 마음은 버스 속도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버스를 타고 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흘러가는 주변을 보는 일이리라. 흩어지는 구름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지나가는 나무를 보며 살아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또, 거대한 산을 응시하며 우리 삶을 돌아볼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곁에 있는 이들을 보는 일이 아닐까? 머나먼 목표를 가만히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목적지도 알 수 없는 그곳을 가며 말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보다, 과정을 알아가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리라.
공상을 하며 걷다 보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 주위에 지나는 일이 떠오른다. 아직 친구가 오지 않았지만, 내 주변에 흐트러진 일상을 본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을 한 조각 찾았다. 놓칠 뻔한 일상도 보인다. 내 앞에 놓인 차가 내는 싱그러운 향도 느껴진다.
우린 버스를 타고 간다.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버스. 물론 시작은 내가 했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속도도 방향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럴 때, 조급하지 말고 주위를 보려고 한다. 버스에서 풍경을 보 듯. 소중한 일상이 있는 주변을. 친구가 왔다.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친구. 우선 이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겠다. 물론 어디 아프냐고 반문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