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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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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pr 17. 2024

기차를 타기만 하면 설레는 이유.

오늘도 추억을 기차에 두고 내린다. 잘 있는지 확인했다. 

기차라는 설렘을 탑니다.


  기차가 참 좋다. 생각만으로 설렌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넓게 하면, 계획을 하는 순간부터 아닐까 싶다. 도착지는 대구.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보낸 동생에게 맛집 리스트를 받았다. 여행 계획의 달인 여자친구는 동선과 시간을 계산한다. 일정이 정해질 때마다 즐거웠다. 어린 왕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행 계획을 세우는 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한 달 동안 즐거웠다. 시간을 착실히 갔다. 여행 날이 왔다. 토요일 이른 아침.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나섰다. 누가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이 가득하다. 저마다 목적지는 다르지만, 기차를 기다린다. 여행도 설레지만, 기차만 보면 참 설렌다. 아마 추억 덕분이리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일로'라는 제도가 처음 생겼을 때다. 기억으로는 24세 이하(?) 젊은 분들에게 자유석을 일주일 동안 무제한 이용을 가능하도록 열어준 패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기다리던 때, '내일로'를 알게 되었다. 가기로 했다. 목적지도 분명치 않고, 떠난다는 데 의의를 둔 여행. 낭만을 채우고 떠났다.


  일주일 동안 다녔다. 가방 달랑하나 들고, 주머니는 얇디얇게 다녔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기도 하고, 돈을 모아두다가, 삼계탕을 먹고는 다음날 점심까지 물만 마시기도 했다. 잠자리는 허름한 여관이기도 했고, 북적거리는 찜질방이 되기도 했다. 자전거를 빌려 경주역에서 불국사까지 무모하게 타고 간 일도 떠오르고, 아버지 지인 집에서 머물고 용돈을 받아 가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땅끝을 갔다가 부산에 머물다, 경주 어딘가에서 끝난 여행. 내겐 기차란 어린 시절 낭만을 채운 여행이었다. 


  

  기차를 타면 지난날 기차에 두고 내린 추억을 본다. 그러기에 설렌다. 


  생각을 한참 하고 있으니, 기차가 왔다. 무거운 짐을 메고 있었지만, 가는 길을 산뜻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는 길이 설렌다. 예전처럼 가락국수를 파는 자리도 없고, 빠르게 가는 탓에 덜컹거리며 간식을 싣고 오는 카트도 없지만, 기차가 주는 즐거움은 여전하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자리에 앉게 되면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설레는 마음도 있고, 가끔은 지친 얼굴이 있기도 하다. 다들 자리에 앉게 되면 비슷한 표정이 된다. 포근한 자리에 앉았다는 생각과 도착지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늘어진 마음. 가끔 덜컹거리는 소리를 뚫고 웃음소리가 나온다. 누군가는 코를 나지막하게 그르르 난다. 


  나도 그 생각에 전염되고, 그들에게 좋은 기운을 내어 놓은 탓일까? 지금 사는 곳과 그곳이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싶지만, 떠나 새로운 곳에 가는 일이 즐겁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덕분일까? 덜컹거리는 기차는 몇 차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도착지에 다다른 고객들은 나갔고, 빈자리는 채워진다. 


  2시간 남짓. 도착했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동대구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추억을 기차에 두고 내린다. 잘 있는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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