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방탈출>-오지은
방탈출? 방탈출!
내겐 취미가 여럿 있다. 독서가 대표다. 소설 속에 풍덩 빠져 살기도 하고, 마음을 호방하게 하는 인문학을 읽기도 한다. 정적인 취미로 보이지만, 머릿속 무척 요란한 취미다. 생각은 소란스럽지만, 몸은 아닌 모양이다. 책만 읽다 보면 몸이 찌뿌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만난 취미가 바로 "방탈출"이다. 여자친구 손에 끌려 시작한 방탈출. 지금은 그녀가 내 손에 끌려간다. 지금까지 헤아려 보니 20방이 조금 넘었다 ('방'이라는 용어는 20번의 방탈출을 했다는 마니아들의 용어다). 몇 번의 방탈출을 하고는 글까지 썼다. <지혜, 신뢰, 어짊, 용기, 위엄을 키우는 방법>
눈을 감고 방에 들어간다. 직원의 문 닫는 소리가 나면, 이제 시작이다. 다른 세계다.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우린 다른 공간에 놓인다. 현실의 나를 잠시 벗고, 주어진 역할을 주워 입는다. 단서를 찾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물쇠를 연다. 길을 찾다 잃으면 힌트를 쓴다. 겨우 다음 방으로 넘어간다.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따라가다 눈물짓기도 하고(정말 감동이 있는 방탈출은 마지막에 무척 민망할 정도로 눈물을 글썽인다). 무서운 테마 탓에 오들오들 떨다가 오도독뼈가 될 지경까지 간다.
방탈출 이야기는 많은 분들과 해보질 않았다. 가까운 친구뿐이다. 대부분 관심 없거나, 한 번 정도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방탈출 진심인 분을 만났다. 바로 오지은 작가의 <인생은 방탈출>이다. 어떤 분야도 상관없다. 난 한 분야에 천착해 들어가는 이들을 보면 경외감을 느낀다. 그들은 여지없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는 늘 삶이 녹아져 있다. 작가가 남긴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방탈출을 한다면 2~3만 원만 내고 짧은 시간 동안 여행 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page 16~17)"
방탈출에서는 다른 방으로 가기 위해 문을 잘 닫아야 할 때가 있다. 문을 잘 닫아야 장치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문을 잘 닫지 않으면 장치에 오류가 생기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다. 문을 닫으면 기존 방문은 닫히지만 다음 이야기가 전개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문이 닫히면 끝나버릴 것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열린다. (page 148~149)
방탈출도 준비 하나 없이 테마 속에 입장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장비와 아이템을 만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방탈출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비우고 간다. 만나는 아이템이 이야기를 채워줄 테니까. (page 200)
다른 방탈출 그룹에 가면 친구들이 지문을 읽기 싫다며 나한테 읽어서 요약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내 속성은 변하지 않는데 어딘가에서는 환영을 받고, 또 어딘가에서는 천대를 받는다. (page 243)
방탈출은 우리가 평소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단박에 마주케 한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던 문제는 집어던지고, 눈앞에 있는 문제에 집중하고, 답을 찾는다. 곁에 동료가 있다면 협업한다. 문제를 찾고, 풀기를 반복하면 끝이 있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문을 열면 직원의 박수 소리가 울린다. 성취감이 폭발한다. 함께한 이들과 손을 잡고 소리를 지른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단박에 빠져나갈 수 있다. 역할이 주어지고, 우린 답을 찾는다. 이야기를 글자로, 영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 감동이 있을 수도, 슬픔이 있을 수도 있다. 간접으로 체험하는 것과는 농도 자체가 다른 체험이 바로 방탈출이다.
이렇게 좋은 방탈출을 많은 분들에게 영업하고 싶다. 함께 성취감을 나누고 싶다. 마작에 격언처럼 내려오는 문장이 떠오른다. "마작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 줄 알아? 바로 4명을 모으는 거야." 이 말처럼 방탈출도 사람을 모으는 일이 참 어렵다. 방탈출을 고민하고 있는 분, 아니면 한 번의 방탈출만을 해본 분들에게 이제는 말보다는 이 책을 추천해야겠다.
난 이번 주말 방탈출 예약이라는 피 튀기는 전쟁터로 들어간다.
덧붙임 1
키이스케이프 (방탈출 세계에서 탑 카페)는 실패했지만, 비트포비아 던전(마음을 그려드립니다)은 성공했습니다. 즐겁게 하고, 후기를 남길 수도!
덧붙임 2
브런치 대상! 오지은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방탈출 책 덕분에 다시 방탈출의 열의를 불태워 봅니다.
https://brunch.co.kr/@ojen1128
https://brunch.co.kr/@starry-garden/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