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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n 09. 2024

내가 두고 온 추억 유실물 - 학교 도서실 사서

지금 나를 만든 조각들.

내가 두고 온 추억 유실물 - 학교 도서실 사서.


  시간을 분절하곤 한다. 연속되는 시간에 기준을 여럿 세우고 분리해 두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덕분이다. 이력서처럼 딱딱하게 분리할 수도 있고, 감정에 의지한 채 나눠볼 수도 있다. 다양한 기분이 있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어떨까?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잃어버린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을 찾아준다. 책을 펼치면 거대한 유실물 센터에 들어온 기분이다. 거닐었다. 나도 잊고 있던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학교 도서관이다. 




  난 시골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이른바, 읍내라고 하는 시내는 마음먹고 뛴다면 15분이면 끝난다. 흔하디 흔한 프랜차이즈 매장은 없고, 편의점 따윈 없는 촌이다. 학교도 학생 수에 따라 작았다. 두 개의 반을 겨우 채웠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 따윈 없다. 초등학교 동창이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차이라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입시 출발선에 섰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하는 일이 있다. 임원을 뽑는다. 반장, 부반장은 선거로 선발되었고, 서기는 선생님이 지명했다. 


  유권자인 난 시큰둥하게 과정을 지켜봤다. 아직 선생님은 과정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도서관 사서를 뽑는다는 이야기. 점심을 조금 일찍 먹을 수 있다는 특권. 점심시간과 학교가 끝나고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는 불이익. 짧은 내용이 이어졌다. 지원자를 우선 받는다는 말에 무슨 용기인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또렷하지 않지만 손을 들었다. 지원자가 없자, 그대로 끝났다. 그렇게 난 3년 동안 도서관 사서로 활동했다. 


  도서관은 조용했다. 점심에는 다들 축구하느라 바빴다. 저녁에는 대학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집으로 가기 급했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도 이를 아시는지 관리는 느슨했다. 투철한 책임감은 아니지만, 열고 닫음에 시간을 꼭 맞췄다. 


  3년이 지나고 대학에 지났다. 도서관 사서는 내게 몇 가지 흔적을 남겼다.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불통쟁이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가 아날로그를 밀어내었을 때도, 책을 읽었다. 일 년에 4.5권을 겨우 읽는 지금. 여전히 책을 사 모으는 괴짜가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책장을 거니는 재미를 알았고, 고전이라 이르는 책들에 감동받으며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갈 곳 없는 친구들이 나와 수다를 떨기 위해 온다면, 읽을만한 책을 짚어주기도 했다. 물론 읽진 않았지만.



  도서관을 쓸고 닦으며 책을 읽던 나날을 떠올리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아날로그 근본주의자라 그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때가 좋았지 하며 디지털 시대를 보며 혀를 차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잃어버린 유실물처럼 잊고 지내던 순간을 꺼내 읽으며, 지금의 내가 된 이유를 찾게 된다. 


  책을 좋아하고, 이젠 책까지 쓰는 지금의 나. 전자책은 피하고, 종이책만을 읽는 나. 나라는 존재가 내가 두고 온 유실물에 있었다. 책을 덮으며 유실물 센터를 나왔다. 이 책에는 나라는 존재의 조각이 여럿 있다. 가끔, 그곳을 다시 가려고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을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지금도 괜히 뒤적거린다. 생각보다 자주 가게 되겠다.



나누고 싶은 문장.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가운데 우연에 굴복하고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거대하고 외로운 행성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좌표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때의 그 무섭고도 짜릿한 해방감을 경험하지 못한다. (page 40)


  구글은 당신에게 10만 개의 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사서는 올바른 하나의 답을 가져다준다. (page 80)


  우리가 가장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은 아마도 페이스타임, 줌, 구글 미팅의 화면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때가 아닐까. 안전거리가 확보되었을 때만 우리는 타인의 눈을 바라본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에야 말이다. 하지만 상대망은 다른 창을 열고 다른 것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page 233)



추천하고 싶은 분.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을 추억하고 싶은 분.

-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은 분.


*생각의 힘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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