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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ug 09. 2024

25년 전 어머니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5년 전 어머니에게.


    안녕하십니까. 무슨 편지인가 싶으시죠? 지금 곁에 있는 아이가 아직 오지 않은 날에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으실 겁니다. 아! 지금 방에 과거의 저는 자고 있을 겁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속는 셈 치고 읽어보시죠.


   편지는 독특합니다. 지금 아는 정보를 전달해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힘든 일들을 비껴나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정보를 적었는데, 사라라고 없어지더군요. 아마 지금의 내가 과거를 바꿈으로 발생하는 타임 패러독스일까요? 적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욕망에 가득한 마음은 접었습니다.


  이제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적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아마, 지금 상황이 많이 어렵지요? 라면 하나로 며칠을 먹어야 하고, 도움 청할 곳 없어 답답하실 겁니다. 또, 일을 나가려 해도 어린 제가 혼자 있는 상황이 두려우실 테지요?


  하나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잘 돌봐주신 덕분에 전 그때를 고통도,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라면을 나눠 먹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햇살을 보며 부업을 하던 때도 전 즐거웠습니다. 밝은 어머니의 웃음 만으로도 전 행복했습니다.


  아! 하나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참다 참다 어머니가 일을 나가신 무렵인가 봅니다. 혼자 있는 저에게 드래곤볼 비디오 몇 편을 두고 나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혹시 누군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면,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하셨지요. 한 끼 먹을 밥과 간식을 두셨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다면 꼭 전화하라고 유선 전화기 옆에 두신 전화번호도 있었습니다.


  '123-4567'


  이 정도였겠지요? 드래곤볼을 몇 번을 보고 밥 먹고 까무룩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무서운 꿈을 꾼 탓인지, 아니면 유일한 친구인 어머니가 보고 싶은 탓인지 전화를 걸었답니다. 123 앞에 3개까지만 누르고 멈칫했습니다. '-'는 전화기 번호판에는 없더군요.


  앞 3자리만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무서웠거든요.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연결 고리가 끊어진 기분이었다랄까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 다시 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오셨더라고요.


  이 긴 이야기를 왜 했냐고요? 꼭 알려주세요. 그 녀석 끝까지 '-'를 찾다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못하고 무서웠답니다. 전화기 쓰는 방법을 꼭 알려주세요.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을 가득 담아주신 덕분에 가난이라는 불편함이 누수되어 흔적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어머니. 혹시 스스로를 탓하고 계시다면, 모두 흘려보내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경험이 지금의 단단한 저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25년 뒤, 그 아들이 어머니에게 아마도 이 이야기는 못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오래도록 못 할 말일 수도 있습니다. 용기 내어 편지에 담아 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P.S.

  거친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남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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