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이야기 하지 말고, 기본을 확인해.
올해도 편지를 써봅니다. 다른 선물보다 편지를 더 좋아하시는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에 진심을 항상 다 적지 못하지만요. 존경받을 만한 어른을 가까이 둔다는 건 무척 행운입니다. 섣불리 충고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분. 제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비로소 충고를 원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어른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앞에 놓일 때마다 비빌 언덕이 되거든요.
아직도 무척 바쁜 하루를 보내시는 교수님을 보며 배웁니다. 30년 동안 매년 하신 수업을 매번 다른 수업자료로 고치시고, 여전히 공부를 하시며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분. 긴 연구 기간에도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시고 공부하는 모습은 제게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몸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존경에 마지않는 어른이 교수님이라 저는 항상 감사합니다. 가끔 선배들이 교수님을 찾는 것을 보고 어떤 마음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생활을 꾸려가며 답답한 마음을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뵙는 것으로 해소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갑자기 쏟아내느냐?라고 의아해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 밖에 없는데, 저도 말하지 않으면 혹시 모르시까 해서 글로 적어봅니다. 아마 교수님 얼굴을 뵙고는 이런 말 못 할 것 같아 편지로 적어 왁스 실링으로 단단히 닫아 드리고 저는 후다닥 도망할 겁니다.
제 삶에도 답이 없는 문제가 도착합니다. 마음을 들들 볶으며 지원한 일들은 족족 거절당했고, 제가 한 선택들에 대한 의심이 높아질 때마다, 교수님의 말씀을 곰곰이 짚어봅니다. 혹시나 답이 있을까 하고요. 그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이야기하지 말고, 기본을 다시 확인해 봐."
해석하기 어려운 실험 결과가 나왔을 때, 항상 하시던 말이시죠. 마음에 넣고 눈앞에 있는 문제를 봅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적절한 답이 보이기도 합니다. 족족 거절당한 이유는 나에게만 있는 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일뿐이라는 답으로. 내가 한 선택을 뒤받침 하는 일인 기본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고민케 합니다.
만나지 않고, 교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답을 향해 가는 방향이 흐릿하지만 보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뵙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편지지 뒤에 숨어 적어냅니다. 교수님은 어떤 표정으로 이 편지를 보고 계실까요? 그 모습은 보지 못하겠지만, 미소가 짓기를 바라봅니다.
이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요? 언젠가 손으로 꾹꾹 눌러 보내드릴 날이 있겠지요? 그때까지, 여기에 적어두고 보며 다듬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이 큰 산으로 곁에 오래도록 머물길 바라는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