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돼지 잡는 날: 장례식
마을에는 큰일이 일 년에 몇 번씩 있다. 큰 일이라 하면, 결혼식과 장례식이 대표적이다. 장례식이 기억에 더 남은 건, 아마 결혼보다 자주 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이미 그때부터 젊은이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갔다. 도시를 경험한 이들은 시류에 맞게 결혼을 '신식'인 서양식을 하길 원했을 테다. 반면, 죽음을 맞이하신 분들은 오랜 기간 동안 터를 잡고 산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지금처럼 병원 침대에서 영안실로, 그리곤 장례식장으로 착착 진행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자신이 산 집에서, 자신이 지낸 방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장례식이 시골에서 자주 있는 '큰 일'이 되었으리라.
돌아보니 내 친족 중에 돌아가신 분은 내 나이 사십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한 실감이 참 안되었다. 장례식은 먹을게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가니 마을에는 활기가 돈다는 느낌이 강했다. 장례식의 시작은 돼지를 잡는 것이다. 잡은 돼지고기로 손님을 대접하는데, 보통은 국밥이나 육개장이다. 손은 적게 가고 대량으로 준비가 가능하며, 따뜻한 음식으로는 제격이었다.
마을에 돼지를 키우는 집이 서너 집은 되었다. 돼지를 키우는 집은 집 한편에 울타리를 쳐서 키우는 게 보통이었다. 큰일이 시작되면 보통은 동네에서 기르는 돼지가 타깃이 된다. 잔치를 하는 집에서 값을 치르고 데려간다. 적당한 크기가 없으면 다른 마을에서 한 마리를 사 온다. 마을에는 한 명씩 돼지를 잡는 사람이 있는데, 돼지는 그에게 바로 인도된다. 지금은 돼지고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냉장고를 보며 고르지만, 그땐 잡았다.
돼지의 네 다리를 밧줄로 묶곤 뒤집어 놓는다. 빠른 손은 날카로운 칼을 쥐곤 목에 줄을 하나 긋는다. 그럼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온다. 한동안 마을을 울리는 돼지 외침이 이어지다, 곧 사그라든다. 쏟아져 나오는 피는 고이 모아 선지로 만들어 먹는다. 돼지 잡는 분은 날랜 손으로 돼지를 재빠르게 해체한다. 그때가 되면 우린 소리만 들리는 모퉁이에서 기다린다.
"야, 다 됐다. 가져가라."라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중 한 명이 후다닥 간다. 손에는 지린내가 나는 오줌보가 축 늘어져 있다. 얼른 개울가로 가 물에 한참을 담가놓는다. 한참을 몸이 달싹거리며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쳐 개울가에 놓여있는 오줌보를 들고 나와 보릿대를 찾는다. 축 늘어진 오줌보를 이리저리 보고 구멍을 찾아 보릿대를 조심스레 집어넣는다. 여기가 중요한데, 자칫 잘못하면 찢어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면 우리가 차기 알맞은 공이 된다.
우리는 바로 축구 선수가 된다. 탄력이 좋은 공이 이리저리 튀어 가는걸 우린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상상의 골대에 서로 오줌보공을 차길 반복한다. 4대 2, 6대 4... 그러다 숫자를 세길 포기할 쯤이면 배가 고프다.
그럼 자연스레 장례식장으로 가 배를 채운다. 우리가 앉자마자 어머니나 친구들 어머니가 어서 앉으라 하며 바로 육개장이, 국밥이 나온다. 편육이 함께 나오기도 하고, 떡이 나오기도 한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음식을 양껏 먹어도 더 주시니 우린 음식이 목까지 찬다는 비유를 실천한다. 누군가의 슬픔과 죽음의 기억이 어린 나에게는 돼지 잡는 날이었고, 축구였며, 풍성한 먹을거리였다.
돼지 잡는 장면을 생생하게 설명하는 게 무척 생경했다. 직접 돼지를 잡는다니. 정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실제로 듣는다니,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오줌보로 축구공을 만들어 논다는 건 소설책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한 생을 살아온 사람이 바로 부모님이다. 그들도 잊고 산다. 생각의 집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 기억은 존재한다. 이번의 이야기로 난 그 먼지를 털어내고, 잘 닦아 글로 써내었다. 그는 그 기억을 잘 보이는 곳이 두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