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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02. 2024

공포 체험을 하는 한 가지 이유.

높은 밀도의 공통 경험!

공포 체험을 하는 한 가지 이유.


  두어 달 전.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다. 무더운 여름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다다른 곳은 한국 민속촌이다. 사극 드라마에 배경으로 자주 나오던 한국민속촌. 더운 날 야외 일정에 물음표를 띠웠다 말았다. 콘텐츠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은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여름에 사람을 모으는 콘텐츠는 바로 "공포 체험"이다. 조선 시대를 옮겨둔 그곳에 어둠이 내리면 전설의 고향(모르신 다면, 그대는 젊은 사람입니다)을 연상케 한다. 한국 민속촌이 심야 공포촌으로 바뀐다. 친구들 몇몇은 몸서리를 치며 싫다고 했지만, 강행되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잊고 있었다. 시간이 빨리 가더니, 만날 시간이 왔다. 자고로 친구들과 논다는 건 맛있는 먹거리를 빼둘 수 없다. 창고형 매장으로 달려가 카트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우리 쇼핑은 멈췄다. 기대하던 숙소에 짐을 두고 우린 후다닥 민속촌으로 향했다.


  작열하는 태양, 바람 한점 없는 한국 민속촌.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동력이 되었다. 공포체험을 예매하는 곳으로 후다닥 달려가니, 아뿔싸.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져 있다. 두 명을 앞으로 보내어 상황을 살펴보니, 체험하긴 틀렸다. 남은 자리는 10시 이후에나 있다는 정보다. 



  공포를 몸서리치게 반대하는 친구는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기대하던 공포체험을 놓인 친구는 기대감이 누수되어 빠져나간다. 주위 구경을 좀 더 하다 카페로 모였다. 열기를 시킬 밭빙수를 기다리며 회의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받았던 팜플랫에 빼곡한 일정을 보다 무릎을 탁 쳤다. 6시에 하는 무료 공포체험이 남았다. 바로 '옥살창귀'.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30분 미리 줄을 섰다. 우리가 일등이다. 무슨 줄이냐며 묻는 사람이 쌓이더니, 이제는 줄이 끝이 보지 않게 늘어섰다. 직원분이 오시고 준비가 끝났다. 안내를 따라 3명씩 두 팀이 만들어졌다. 입장했다. 꺄!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나오는 우리를 보며 비웃는 친구들. 밖에서 기다리니 여지없다. 그들의 비명 소리가 우렁차다. 


  요약하면, "옥사에서 탈출했더니, 여긴 어디?"라고 할 수 있다. 들어가서 나오는 시간을 모두 합쳐도 3분 정도? 최대 5분 아래다. 짧지만 강렬한 공포다. 공포 경험 덕분일까?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나눠 자신의 했던 일들을 나열한다. 


  나도 기억하지 못한 내 말을 들려준다. 난 무서운걸 잘 버티는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3분짜리 공포를 통해 우린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본격적인 모임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운전하며, 공포 체험을 하는 이유를 고민케 한다. "높은 밀도의 공통된 경험." 단어로 만들면? "이야기"다. 어렵고 공포스러운 순간을 나눴다는 경험이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청각, 후각, 시각, 촉각이 모두 평소보다 예민해지니, 평소의 시간보다 밀도 높은 경험이 쌓인다. 거기다, 공포가 우리의 날 것을 보여주니, 웃음이 더해진다.


  엄청난 정보를 넣고, 생각지도 못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서로를 보며 웃는다. 뻣뻣해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기도 하다. 어떤 근엄한 사람들도 공포 속에서는 망가지기 일쑤다. 경험을 나누고 나니 체험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맞다.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위해 공포 체험을 하는 모양이다. 


  늦게 가서 체험하지 못한 것들이 궁금하다. 다음에는 꼭 친구들을 끌고 가봐야겠다. 그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까? 친구들은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있나보다. 여전히 공포 체험 이야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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