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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20. 2024

과부하를 주어야 충전이 됩니다.

"배터리를 교체해야 합니다."

"배터리를 교체해야 합니다."


  얼마 전 카센터를 방문했다. 브레이크가 뻑뻑하고 시동이 버겁게 걸렸다. 가야지 가야지 하며 미뤘다. 미루면 일이 난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5분 동안 씨름 하다 겨우 차가 부르릉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음이 다급했다. 카센터에 문의를 하니, 오늘 맡기면, 내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없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차가 없는 빈자리가 컸다. 수리가 다 되었다는 전화를 반겼다. 문제는 배터리라고 일러준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시면 더 해주겠다는 친절한 말을 남기셨다. 퇴근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센터로 향했다. 


  "12가 3456번 자추분?"


  고개를 들어보니, 인상 좋은 엔지니어 분이 계신다. 점검 결과는 아찔했다. 배터리를 점검해 보니 완충을 해도 20%이고, 카센터에 도착했을 때 충전율이 5%도 안 되었다고 한다. 오실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며, 앞으로 배터리 관리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배터리는 소모품이라며 가끔 점검을 하시는 것이 좋다는 말 더해주셨다.


  돌아가는 길. 힘차게 시동이 걸리는 차에게 감사하며 집으로 향했다. 배터리 관리 방법을 떠올려 본다. 짧은 거리를 주행할 때 라이트를 모두 켜면 충전에 좋다. 과부하를 줘야 배터리가 부족할 거라 생각하고 짧은 거리지만 충전을 활발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되뇐다. 


  회사에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충실하게 살 때면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집중하며 일하고, 집에서는 집을 건사하는 것. 모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리라. 그 일이 꼭 나쁜 일이기만 할까?


  늘 힐링을 바라고, 늘 휴식을 바라고 있지만. 진정한 힐링과 휴식을 충실한 삶을 살았을 때 오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가닿자, 배터리의 원리가 이해된다. 직장 생활을 하며, 집에 묶이며, 우리는 늘 떠남을 떠올린다. 하지만, 갈 회사가 없고,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를 상상해 보자. 


  물론 좋을 것이다. 몇 개월? 길면 1~2년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늘어지고, 한가하다는 사실이 내 에너지 전체를 줄이는 일이 된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니, 결국 방전의 길로 가는 것이다. 가끔 보면, 일로도 번아웃이 오지만, 쉬다 보면 무기력증에 걸리기도 한다. 둘은 양 극단에 있지만, 결국 도달하는 점은 비슷하다. 


  내 안에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고 없다. 쉰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조금의 부하를 준다면, 내 능력은 향상될 테다. 집안일을 하는 능력이 손에 익어 더 커진 배터리가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같은 일이라고 멍하니 하기만 한다면, 다른 도전을 하거니 개선하는 작업이 없다면, 배터리는 조금씩 소진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자 집에 도착했다. 라이트를 끄고 내린다. 오늘도 여기까지 무사히 나를 데려다준 차가, 그리고 충분이 충전된 배터리가 고맙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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