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었다고 외양간 안 고칠 거야?

by 뭇별


갓생!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 속,

촘촘하게 세워둔 계획표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삶.

낭만 속 나의 모습을 살아내는 완벽한 하루와 갓생.


이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의 트렌드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특히나 갓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하다.


대개 예상치 못한 문제, 갑작스러운 호출, 혹은 나의 게으름 한 스푼이

공들여 세운 갓생 도미노 하나를 툭 하고 쳐버린다.


"에헤이, 조졌네. 망했어. 오늘 하루 그냥 던져버려~"

심통이 이리 크게 나는 걸 보면 공들였던 마음이 너무 컸는가 보다.


인기 게임이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도 꼭 이런 부류가 있었다.

게임 초반, 본인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가진 아이템을 다 팔고 본격적으로 아군을 방해하는

일명 '트롤'.


나름대로 다시 정의해 보자면

내 머리로 기가 막히게 세워둔

100점짜리 계획은 이미 어긋났고

잘해봐야 70점짜리는 의미 없으니

남은 기회마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자는 자학적인 포기.


그 수많은 트롤 안엔 내가 포함된다.

저녁 7시, 아내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지만 갑작스러운 야근이 시작된다.

저녁 8시. 계획이 어긋났다는 사실이 입력되자 내 안의 트롤이 꿈틀댄다.


뒤늦은 퇴근길, 차 안의 공기는 히터로 따듯해졌건만

내 얼굴은 영하 10도. 핸들만 툭툭 쳐댄다.


신호등이 빨간불에 걸릴 때마다 죄 없는 브레이크를 거칠게 밟는다.

점수 높으면 자동차보험 할인된다며 애지중지하던 T-map 운전점수가 1점 떨어졌을 것이다.

내 얼굴도 1도씩 차가워진다,

아내 때문도, 야근 때문도 아니다.

100점짜리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부리는 심통이다.


결국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내가 건네는 건

'내 하루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심통과 침묵.


나의 트롤링은 8시 이후에 누릴 수 있었던 모든 다정함 전부를

기어이 쓰레기통에 처박은 뒤에야 만족한다.


소 한 마리를 잃었으니 외양간 문을 활짝 열어둔 꼴.


70점이 열 번 쌓이면 700점.


100점이라는 열심에 취해 남은 기회를 다 던져버리기엔

우리에게 남은 8시 이후의 밤들이 너무나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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