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에 불청객은 없습니다.

by 뭇별

오늘은 정원지기가 되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사는 동네 끝자락,

산책길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그곳엔 작은 정원이 하나 있다.


화려한 수목원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고 거창하게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산책길을 걷다 "이런 곳이 있었네?" 근데 생각보다 볼게 좀 있네?" 하며 자연스럽게 들르게 되는 소박한 정원.


정원의 문이 잠겨있던 날을 본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왜냐고?

정원을 관리하는 내가 문을 잠근 날이 없기 때문이다.


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하루는 꽃중년 어머니들이 대여섯 명씩 짝을 지어 들어온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 중이셨는지, 손에는 커피도 들려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머, 여기 봐”하며 소녀처럼 까르르하고 웃는다.

가장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다 같이 사진도 찍는다.

한 사람의 웃음이 터지면 나머지가 따라 웃고,

그중 가장 크게 웃는 어머니는 꼭 옆에 앉은 친구 팔을 한 번 더 때린다.


"이거 산수유나무야."

>>> "아니야 이게 무슨 산수유야~"


식물 이름 좀 모르는게 대수인가, 즐거우면 그만이지.

요즘 자주 해먹는 반찬 레시피, 홈쇼핑에서 봤던 여행상품에 대해 긴 시간 수다를 떨곤 웃으며 나간다.


어떤 날은 젊은 커플이 온다.

둘은 식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름표를 읽지도, 꽃을 오래 보지도 않는다.

그저 햇빛이 가장 예쁜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더니 뽀뽀도 한다.

정원과 꽃이 좋아 왔다기보단 나름의 방식으로 추억을 만들러 온 듯하다.

그래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꽃보다, 꽃 앞에 함께 서 있던 추억이 더 오래 남을 테니.


어떤 날은 아빠와 딸이 들어온다.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거리가 철저히 유지된다.

딸은 입구에서부터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다.

아빠는 그런 딸 옆에서 천천히 걷다가,

나무 이름표를 읽으며 아는 체를 한다.


“이건 고무나무네.”

“이건 벚꽃나무 비슷한데.”

>> "여기 다 써 있잖아. 아빠 그냥 아는 척하는 거잖아"


“아빠 어릴 때는 먹을 게 없어서 이거 진달래. 이거 따서 뒤에 있는 꿀도 따먹고 그랬어.”

>> "어"


아빠는 개의치 않는다.

"근데 철쭉이랑 헷갈리면 안 돼 철쭉 꿀은 먹으면 안 돼. 왠 줄 알아? 그거 독 있어 독"


아빠는 알고 있는 나무를 하나씩 말하며

본인의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낸다.

정원을 다 돌고 나갈 때쯤 둘은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딸은 화면 속 제모습을 보고, 아빠는 딸을 본다.


무심한 듯 스윽 들어와 꽃과 나무를 꼼꼼히 살피더니

다음 날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돌봄이 필요한 나무에 영양제를 놔준 아저씨도 있다.


그런가 하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들어와 몰래 담배를 피우고 가는 날도 있다.

탁한 담배연기가 정원의 맑은 공기를 더럽힌다.

재를 털고, 가래침을 뱉고, 꽁초를 손가락에 끼워 여기저기로 퉁겨댄다.

그러고는 깔깔거리며 정원 문을 발로 밀어 나간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들어와 정원을 대충 돌더니

화분을 발로 툭 차고 나간다. 줄기가 옆으로 꺾인다.


조팝나무 사이로 쓰레기를 밀어 넣는 이도 찾아온다.


이제 막 피어난 여린 봄꽃 위로

운동화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그 자리를 오래 쳐다보게 된다.

누군가의 이유 없는 짜증이 나의 정원을 지나갔다는 사실이 싫었다.


더 싫은 날도 있다.

유독 그런 불량한 이들만 들락거리는 날.

담배연기, 폭력, 짜증이 뒤섞이니

이곳이 내가 사랑하던 그 정원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이런 날은 유독

늘 들러 정원을 아껴주던 이들의 발길마저 뜸해진다.


조용히 둘러보고 가던 옆집 할머니도

꽃과 나무를 자식처럼 아껴주던 아저씨도

햇빛 예쁜 자리를 찾아 사진 찍던 연인들도

누구라도 와서 힘이 돼줬으면 하는 그날엔 다들 잘 오지 않는다.


이런 날이 반복되니 확 짜증이 난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거면 문을 닫아버릴까?

좋은 사람들만 들어오게 하고 불량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못 들어오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정성껏 가꿔온 이 공간 전체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속앓이를 하던 중 정원 앞에 세워진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겐 너무도 당연하니 되려 잊고 있던 팻말.

"모두에게 열린 공간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말은

반가운 사람들만 들인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택해본다.


눈에 보이는 꽁초를 줍고

짓밟힌 자리 옆에 꽃 한 송이를 더 심어 본다.

보란 듯이 꽃을 꺾고 간 자리에는

그보다 더 여린 모종을 심어둔다.


그러다 보면 반가운 이가 다시 오는 날이 있다.

옆집 할머니가 지나가다 빼꼼하고 고개를 들이미시면 얼른 뛰어나가 상추 몇 장을 쥐여드리기도 하고,

산책을 나온 부녀에게는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는 다정도 건넨다.

"어머, 새로 심었네” 하고 웃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의욕이 샘솟아 꽃을 한송이 더 심는다.


다소 불량한 이들이 들어왔다는 사실로

이 공간이 잘못된 곳이 되진 않았다.



나의 생각도 정원과 같았다.


우울과 불안만큼 나를 힘들게 한 건

'왜 나는 자꾸 이런 생각을 할까?' 하는 자책이었다.


내 머릿속에 이 불청객들이 드나든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심각한 결함이 생긴 것 같기도,

날 당장 무너뜨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열린 공간에 불청객은 없다.

꽁초가 남았다고 꽃의 향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잠시 머물다 갈 손님들로 내 정원 전체를 미워할 필요는 없을 테다.



*****댓글을 읽다보니 약간의 오해가...

저는 실제 정원지기가 아닙니다 ㅠㅠ


이번편은 새로운 시도를 해본건데

부족한 필력인지라 오해가 생긴듯합니다..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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