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으로 돌아갈래?
우울은 책과 영화에서나 보던 때로.
불안이 내 숨통도 조일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던 때로.
영원히 살 것처럼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가끔 스스로에게 물으면
선택이 참 어렵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으면서 괜히 한 번씩 묻게 된다.
불현듯 담배가 생각나거나 새로운 일상이 유독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날이면 특히 그렇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이 사람이 내적으로 어디까지 무너졌었는지,
그 무너진 자리를 어떻게 메우며 살고 있는지가
특유의 주파수 같은 것으로 전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주파수는 대개 끌림으로 이어진다.
한 번도 금 간 적 없는 매끈한 도자기 같은 이보단
조각났다 기어이 다시 붙여진 이음새를 가진 이에게 더 끌리게 된다.
물론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도 충분히 지혜롭고 멋지게 제 삶을 꾸려가는 이들도 많다.
그런 이들을 볼 때면, 혹은 의욕에 넘쳐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후임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투박한 참견을 툭 던지게 된다.
"쉬면서 해. 휴무 반납하며 일하는 게 잘 사는 건 아닐 거야."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처럼 무너져 보지 않아도 지혜롭게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나름의 다정으로 받아들였으면 싶다.
잘 사는 것. 그 기준도 내게는 많이 달라졌다.
무너짐의 끝에서 생의 마지막을 미리 상상해 보게 되니
'어떻게 살아야 나중에 아쉬움이 덜할 것인지'가 나름 분명해졌기 때문일테다.
이렇게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가늠하던 중심추가 통째로 흔들리고나니
삶의 우선순위가 자리를 다시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삶을 의미 있는 기억들로 가득 채우는 ‘추억 부자’가 되는 것에 더 마음을 쓰게 된다.
내 의지만으로 모든 게 항상 좋은 추억이 될 수는 없을 테니,
이 시기에 갈 수 있는 가장 멋진 장소를 찾아 그 곳의 근사한 장면을 빌려도 보고
제철음식이나 다정한 주변인의 배려에 기꺼이 기대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축제하듯이 보내며 내 일상을 결코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러고 나니 내 인생의 페이지가 다른 내용의 책처럼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삶이 통째로 틀린 것은 아닐테다.
다만 그때의 나를 만족시키고 즐겁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만족시키지 못할 뿐이다.
예전의 태평함은 그립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그러니 처음의 질문 앞에서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니 우울은, 혹은 날 뒤흔든 어떠한 사건은,
어쩌면 나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살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게 살아볼 것인지를 묻는 물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삶이 던진 이 물음에, 그저 나만의 생각과 속도로 답하면 그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