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이야기하는 방법
2018.05.02 인천 — 북경
오늘 새벽,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면서 여행준비를 하느라 4시 반에 자러 가서 그런지 아침 7시에 일어나는게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곤함도 잠시, 공항 리무진을 타러 가는길은 설렘으로 가득찼다.
장장 두달 넘게 준비한 여행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였다. 나 또한 여행을 준비하며 브런치의 다른 작가들로 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기에, 나의 기행을 매일 기록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첫번째 이야기는 뮌헨으로 가기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9시간 경유를 하는 동안의 일들로 시작할까 한다.
대전 청사에서 8시 15분 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11시쯤 도착했다. 캐리어 없이 45L 배낭을 챙겼기 때문에 짐을 부쳐야 한다면 패키징이 필요했지만 패키징 기계가 고장난 관계로 결국 공항내 cj 택배 회사에서 박스포장을 했다. 중국 항공 (Air China)은 처음 타보는터라 셀프 체크인 대신에 데스크에서 체크인과 짐 수속을 마쳤다. 미리 사둔 유심을 찾고, 1층 KEB하나 은행 지점에서 국민은행 앱으로 환전 신청 해 놓은 유로화를 찾은 뒤 검문 수속을 거치고 바로 공항 게이트를 찾은게 1시쯤이였다.
타코벨에서 허기를 달래고 여유롭게 면세점을 둘러볼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중국항공을 탄다는것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중국항공도 나름 중국에선 대형항공사이니 믿고 탈만 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이 아니라 언어였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환잉 환잉” (중국어를 핸드폰 자판으로 못쓰는 점 이해 바랍니다)이라는 인삿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중국인 승무원들은 우리를 계속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중국어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첫 한시간은 정신없이 잤는데 일어나보니 침을 거하게 흘리고 자는 내 모습을 발견해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러 “do you have napkins?” 하고 물었는데 napkin, tissue, 심지어 toilet paper 까지 이해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오분간 휴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바디랭귀지로 설명했다. 막 코를 푸는 시늉도 하고. 무얼 닦는 시늉도 했지만 돌아온 말은 “sorry, I don’t understand” 였다. 간신히 옆자리 앉은 중국인 언니가 우리 말을 알아듣고 번역해줘서 침이 다 마른뒤 닦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의 사소한 해프닝은 정말 새발의 피였다. 그래도 나름 어릴적 중국에서 살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대강 알아듣는 단어는 있었지만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중국어 실력이였다.
베이징 공항에서 9시간 경유였지만 무료 공항 라운지 이용권과 무료 호텔 숙박권 중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편안함 때문이였다. 라운지는 사람도 많고 평도 별로 좋지 않길래 몇시간이래도 호텔에 가서 조용하게 잠이라도 청하려 했다. 물론 이게 우리 환상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아낸 것은 무비자체류 심사를 기다리면서부터였다.
현지시간으로 4시에 도착해 무비자 임시 체류 심사를 받기까지 15명 남짓 되는 줄에서 장장 1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일하는 속도가 느린것은 물론이요, 분명 자리는 두갠데 왜 한분만 일하시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아, 기다리는게 지루해서 와이파이라도 연결하려하니까 인증 실패가 계속 뜨면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언니한테 물어보니 간단명료한 해답을 주었다.
“Do you have WeChat? (중국판 카톡이다. 요즘 중국엔 모든 국민이 이 앱으로 소통한다.)”
당연히 우린 없다고 하자, “I know you guys use Facebook, but we use WeChat. No WeChat, no Wifi. Sorry.”
이런게 바로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인가 보다. 결국 줄을 기다리면서 앞에 70살 먹은 영국 할아버지랑 와이파이 없이 수다를 떨었다. 휴대폰 화면보다 사람 얼굴을 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게 더 유익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WeChat을 안쓰는 외국인은 와이파이를 쓰지 못하는게 억울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임시 입국 심사를 끝낸 뒤 호텔로 가는 무료 셔틀을 타는 곳을 인포 데스크에 물어봤다. “go down. Train. Terminal C” 뭔진 몰라도 스무살 눈칫밥에 저 말은 한층 내려가서 공항 연결 철도를 타고 터미널 C로 가면 된다는 것 같았다.
한층 내려가니 우리를 맞이한건 전광판이였다. Relax, Train comes every 3 minutes. 방금 트램을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를 승객들을 위한 너무 다정한 안내문이였다. 하지만 저기 쓰여있는 “풀랫품”은 엄마 품도 아니고 정말이지 어딘지 아직도 너무 궁굼하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 움직이는 곳으로 따라 움직여서 출구까지 나왔는데 Air China Transfer info desk 에선 탑승권을 확인하더니 모델같이 멀끔하게 생긴 어떤 오빠를 따라가라고만 했다. 머릿속에는 정신을 바짝차려서 인신매매는 당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기에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 담긴 눈으로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다행히 한 할머니도 우리와 같은 일행인것 같았다.
그때가 6시 반이였기 때문에 새벽 1시 비행기인 우리 입장에서는 호텔에 가도 두세시간밖에 못 있는 것보다 다시 무사히 공항으로 돌아와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가 더 큰 걱정이였다. 그래서 짤막한 중국어로 열심히 이 공항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언제있냐고 물어봤는데 (모두 영어를 못하셨다) 계속 돌아오는 답변은 환전이 필요하냐는 질문이였다. 아니, 공항이요 공항. 그런데 왜 계속 돌아오는 답변은 "환전? change money?"
결국은 손짓 발짓으로 원하는 답을 얻었지만 (물론 그 답은 “우리는 몰라. 호텔에서 알아봐”였다) 나중에 안 사실은 내가 열심히 “인항, 인항”이라고 한게 공항이란 뜻이 아니라 은행이란 뜻이였다는 것이다.
옆에 같은 버스를 타러 가던 할머니는 우리가 열심히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려던게 기특했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어디로 가냐, 몇살이냐, 몇시 비행기냐, 학교는 어디냐 부터 나중에는 자기 손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호텔로 가는 동안에도 이야기꽃은 끊임이 없었다. (알아듣지 못한 부분에도 오~ 아ㅏ~ 를 연발한 사실은 여기서만 조용히 밝히겠다)
그 할머니는 대만 사람이라고 했다. 옆에 룸메가 조심스럽게 여권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봤다.
오메. 중국땅에서 대만 여권을 궁금해 해도 되는것인가...? 싶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너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대만 여권은 초록색에 위에는 People’s Republic of China 라고 쓰여있지만 햇님 문양 아래에는 Taiwan이라 쓰여있다. 할머니는 그 뒤에 중국주민등록증을 보여주시면서 북경에 오면 자기는 중국인인데 대만 공항에서는 대만여권을 쓴다고 말씀해주셨다. 자랑스럽게 여권을 보여주시고 미국에 있는 손자를 보러 워싱턴으로 내일 출국하신다는 할머니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호텔로 가는 셔틀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매캐한 미세먼지덕에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싸매고있었다. 호텔은 공항에서 정말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만 가는 동안 다른 승객들도 기다리느라 결국 호텔에는 7시에 도착했다.
정이 많던 그 할머니는 우리 객실까지 바래다 주셨고 마지막에는 고맙다는 우리 말에 사랑한다며 포옹까지 받아주셨다.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을 줄 알았더라면 한국에서 조그마한 기념품이라도 몇개 챙겨올껄 그랬다.
호텔에 무사도착을 한 뒤 한시름 놓고 있는 지금, 우리가 아직 최종 목적지인 독일 뮌헨에 도착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북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준기를 좋아한다던 대만 할머니와 70살이면 지문등록을 안해도 된다고 좋아하던 영국 할아버지, 담배는 엄청 피워댔지만 버스 타는 곳 까지 무사히 안내해준 모델 포스나는 중국 오빠까지, 생각지도 못한 만남과 대화였지만 언어는 언제까지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일뿐, 도구가 완벽하진 못해도 인정은 어디에서나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날이였다.
옆에서 룸메가 죽은 듯이 자고 있다. 곧 깨워서 준비하고 다시 공항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