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배낭여행 일지#2] 독일 뮌헨 일지

지구 반대편 사람 사는 이야기

by 별글

2018.05.03 독일 뮌헨 (Marienplatz, Allianz Arena)


뮌헨에 아침 6시 반 비행기로 무사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쾌적하다 느낀 건 기분 탓일까, 장시간 비행에 지쳐서 뮌헨에 도착한 것이 여행의 끝이라도 된 마냥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 이제 와서 언급하는 것이 조금 시간 순서에 안 맞기는 하지만 중국 항공 서비스는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녹차에 날파리가 담겨 있는 것 빼고는, 모든 아시안계에게는 중국어로 말을 하는 것 빼고는, 슬리퍼를 주지 않는 것 빼고는 좋은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내 화장실이 생각보다 쾌적(...? 모순이지만 나름 그랬다)했지만 역시 비행기에서 주는 로션은 발라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시 뮌헨으로 이야기를 전환하자면, 제일 처음 도착해서 짐을 찾고 한 일은 S-bahn과 U-bahn 종일권을 발권하는 것이었다. 그 둘은 우리나라 지하철 같은 시스템인데 U-bahn 은 조금 외곽까지도 뻗는 반면 S-bahn 은 시내 위주로 노선이 구축되어있다.

뮌헨 지하철 노선도. 가운데에 주요역들은 겹치는 노선이 많아 못해도 3분마다 한 열차씩 들어온다.

역시 유럽은 교통비가 장난 아니게 드는 것 같다. 유레일 표를 샀지만 날짜가 부족해 오늘 개시하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해서 따로 S-bahn 종일권을 사게 되었다. 웃긴 건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애초에 우리나라처럼 티켓을 찍고 들어가는 입구도 없다. 오늘 하루 종일 여러 번 탔지만 표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였다. (현지인들도 표를 많이 사던데.... 정말 양심에 맡기나 보다.) 열차 내부에 부정승차 시 70유로 벌금이 있다는 공고 이외에 표에 대한 이야기는 본 적이 없다. (아,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불시에 표를 검표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웃긴 포인트 둘. 특정 구간에서 열차가 서로 연결된다. 연결의 의미는 정말 말 그대로 열차 칸을 다른 구간에서 온 열차와 합쳐서 늘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 역에선 5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웃긴 포인트 셋. 더 어리둥절했던 건 문을 열고 타는 사람들. 문에는 안과 밖 모두 버튼이 있는데(문고리 일 경우도 있다) 나갈 때, 탈 때 모두 사람이 수동으로 문을 연다. 즉,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문이 안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 언급한 5분 정도 열차가 기다리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멋대로 버튼 열고 언제든지 들어오고 언제든지 나간다. (처음에는 열차가 연결되느라 기다리는 줄 모르고 끝없이 자기 멋대로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을 다 기다리는 줄 알았다;;)


웃긴 포인트 넷. 앞서 얘기한 버튼 이야기에서 눈치챘겠지만 스크린도어가 없다. 취객들이 떨어지는 일은 없는지 너무 궁금하다.


웃긴 포인트 다섯. 한국의 지하철에 같은 3호선 이어도 구파발행이 있고 종점까지 가지 않는 열차가 있듯이, 아니면 1호선처럼 중간에 갈리는 노선이 있듯이, 독일의 S-bahn과 U-bahn 도 똑같다. 그래서 알리안즈 아레나에 가는 길에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어리둥절 해 있었는데 친절한 할머니 한 분이 내리라고 해주셔서 간신히 내릴 수 있었다. 역시 어딜 가나 눈치는 빠른 것이 좋다. 길을 모르겠으면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S1번 노선을 타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중앙역에서 DB (우리나라 코레일 같은 독일 철도청) 사무실을 찾았다. 앞으로의 유럽 여정에 기차표 예약이 필수인 구간들을 미리 예약하기 위해서였는데, 우리의 예약을 도와주신 아주머니는 굉장히 단호박이었다. 유레일 패스는 티켓의 역할을 하지만 좌석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타지 못하는 기차들도 있기에 예약은 별도의 과정이다. 우리도 한국에서 이 개념이 정말 어려웠지만 결론은 예약이 필요한 구간이라면 유레일패스와는 별도로 예약비가 필수라는 것이다. 단, 예약이 필요 없는 구간이라면 유레일 패스만 가지고 아무 좌석에 앉아도 무관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정말 예약비가 어마무시해서 유레일 패스가 있으나 마나 할 정도였다. 이에 관해 유레일 패스가 그럼 무슨 쓸모가 있는지 여쭤보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that’s your ticket!!”이라고 소리치셨다. 90유로를 예약하는 데에 모두 쓰고 나니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기분은 무엇일까. 그래도 양손 가득 예약한 티켓들을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앞으로의 여정이 잘 풀릴 것 같은 든든함은 함께였다.

DB 서비스 센터. 각국 사람들이 많아서 은행 창구같은 시스템으로 해놓고 언어별로 창구가 다르다.


정신없던 중앙역에서 호스텔까지는 3분 거리였지만 이 또한 길을 헤매는 바람에 10분이 걸렸다. 체크인은 2시부터라 짐 보관함에 짐을 맡기는데 카운터에 직원이 너무 친절하게 도시 맵을 주면서 여기여기 가보라고 알려주기에 눈물이 날뻔했다. (철도청 아줌마에게 꾸중을 듣고 오는 길이여서 그 친절이 너무 단 비 같았다.)


우리가 묵은 유로 유스호스텔. 개인적인 평점은 5점만점에 4.5점. 아침 식사가 조금 아쉬울뿐 숙소 시설과 서비스는 탁월했다. 가성비는 우리같은 배낭여행족에겐 나쁘지 않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젠 가벼운 몸으로 마리엔 광장까지 걸어 나갔다. 마리엔 광장은 뮌헨의 중심지로, 구시청사, 신시청사를 모두 볼 수 있는 광장이다. 악마와 계약해서 완공할 수 있었다는 프라우엔 성당도 마리엔 광장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프라우엔 성당은 98미터가량 되는 탑이 두 개가 있는데 현재에도 뮌헨 중심지에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성당을 건축할 당시에 그 성당보다 높이 건축물을 만들지 말라는 법 때문에 3유로를 내고 올라갈 수 있는 프라우엔 성당 탑 전망대에서는 모든 뮌헨 중심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갈 당시 공사 중이어서 대신 광장 맞은편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 (St.Patrick’s church)에 갔다. 여기 전망대는 학생 2유로, 성인 3유로의 가격으로 306개의 계단(14층인데, 힘들어도 보람찬 운동이다)을 올라가 바로 앞에 있는 신시청사와 프라우엔 교회의 모습까지 모두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프라우엔 교회와 마리엔 광장.


우리가 성 패트릭 성당에 들어갔을 때 성모성월인 5월을 맞아 어떤 간이 미사를 드리고 계셔서 관리인에게 쫓겨났지만 전망대 매표소 아저씨가 친절하게 아마 성모성월에 관계된 행사일 것이라 알려주셨다.


힘들게 첨탑을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사람이 힘내라고도 해주고, 서로 좁은 길을 비켜주고 고맙다고도 하면서, 같은 첨탑에 있는 것만으로도, 같은 목표를 위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항상 소매치기가 들끓는 유럽이라 해서 불신이 가득했던 마음에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다가오는 모녀, 그리고 다 찍고선 우리도 찍어주겠다는 아저씨, 전망대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한 자매까지.

세상은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보기에
너무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는 순간들이 많았다.

마리엔 광장 옆에 Viktualienmarkt이라는 조그마한 시장터에서 파니니를 하나 포장하고 열심히 뛰어서 Allianz Arena로 가는 U8노선 열차를 탔다. 열차에서 영어 방송을 안 해주기에 어림짐작으로 어디쯤 왔을 거다, 하고 생각하는데 절반쯤 가다가 사람들이 다 내리는데 어리둥절해서 간신히 따라 내리게 된 (전에 언급한 구파발행이 아닌 열차를 타서..) 웃긴 해프닝도 겪고 결국 무사히 12시 40분쯤에 아레나 근처의 역에 도착했다. 말이 근처지, 생각보다 아레나는 은근히 멀다. 내리자마자 보이지만 “사물이 생각보다 멀리 있음”이라는 표지판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땀이 나게 걸어서 가야 했다. 사실은 영어 투어가 1시에 있다는 정보를 알아서 그 먼 거리를 열심히 뛰어갔다. (영어 투어가 1시에 있다는 정보는 사실무근했다..)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오래 보아도, 한결같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아리엔츠 아레나. 정말 팬으로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였다.

아,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필자는 굉장한 바이에른 팬이다. 바이에른에 입덕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포스트에 풀도록 하겠다.


표는 아레나 투어와 박물관 관람을 포함해 17유로였다. 조금 비싼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바이에른 뮌헨 팬인 나로서는 고민의 여지없이 결제했다. 투어가 2시 45분에 있어서 그전까지 박물관에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그런 설렘을 느끼면서 글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아주 꼼꼼히 관람하고 나왔다. 너무 행복했다.


행복은 아레나 투어에서도 계속되었다. 선수들이 실제 사용하는 락커룸부터, 선수들이 필드로 입장하는 계단까지 (심지어 계단에서는 선수들이 실제 입장할 때 나오는 노래도 틀어준다)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한 시간 투어였다. 알리안즈 아레나에 있는 많은 Allianz 로고들은 UEFA 경기 (챔피언스리그)가 있을 때 알리안즈가 UEFA 후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 청테이프로 가린다는 것과, 비즈니스석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있는 좌석이기 때문에 최소 일인당 두 명의 표를 사야 한다는 것, 선수들 락커룸 옆에는 간이식당과 수영장이 있는데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와 그 날의 물 온도는 코치가 결정한다는 것, 구장에 천연 잔디의 온도를 늘 섭씨 6도씨로 맞추기 위해 구장 아래에 온열기가 있다는 것까지 너무 흥미롭고 재밌는 사실로 가득 찬 한 시간이었다.


위의 경기장 사진은 필자가 갔을 당시의 사진이다. 지금은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훨씬 멋지다. (좌석이 다 붉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바이에른 마크와 로고로 색칠되어 있다.) 다시 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아레나에서만 4시간가량을 보내고 다시 지친 몸을 이끌어 마리엔 광장으로 돌아와 시장 구경을 더 하고 물을 사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탄산수였다...). 씻고 짐 정리를 한 뒤 9시쯤에 Augustine이라는 비어 가든에 갔다. 지인의 추천으로 간 비어가든이었는데 아주 조용한 도심에 있는 비어가든이었다. 찾아가는 길에는 정말 이런 곳에 비어가든이 있을까 싶었지만 어둡고 조용한 도시에 저 멀리 보이는 간판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독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맥주니까 뮌헨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현지인들이 자주 간다는 비어 가든에서 장식하고 싶었다.



독일에도 청년들은 술 게임이라는 것을 한다. 서로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한 명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고, 맥주를 몰아 마시고, 언뜻 보면 우리나라 주점에 온 것 같지만 야외 테이블이라는 점, 내 앞에는 바삭한 통삼겹살 구이와 이제껏 먹어본 맥주 중 제일 맛있는 맥주가 앞에 있다는 점이 내가 독일에 있구나를 온몸으로 알게 해 주었다. 목요일 저녁인데도 복작복작한 분위기였는데 금요일 저녁에는 엄청 날 것 같았다. 관광객은 우리 둘 뿐이라 그런지 더 현지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Augustine이라는 맥주 브랜드만을 판매하는데 생맥주라서,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애주가인 필자가 인정할만한 손에 꼽는 좋은 맥주 맛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만큼 내 발이 너무나 고생했기에 오늘 하루의 모든 공을 내 발에게로 돌린다. 오늘 하루 친절히 길을 알려 준 모든 독일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동했고, 지구 반대편이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긴 것이 다르다고, 사는 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 정말 비슷하다. 검표하는 역무원에게 걸려서 사정하는 학생도, 술 게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청년들도, 서점에서 귀여운 엽서에 쓰인 독일어 문구의 뜻을 물어봤을 때 친절히 답해주던 동네 아주머니도 모두 한국뿐 아니라 세상 어디나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새삼스레 다시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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