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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Mar 04. 2023

보내지 못한 메시지는 애석하게도

발신인을 차마 담지 못한 수신인을 그리며.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혜준은 얼마나 울었는지 발갛게 상기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아버지의 오른손이 힘없이 떨어질 때도, 입관과 발인까지도 초지일관 무표정이던 혜준이 아이처럼 소리 내 엉엉 운 건 유품 정리를 하면서다.


 혜준의 아버지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정확히는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다. 혜준이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고 노래방에 있다가 걸렸을 때도, 첫 직장에 다니며 몰래 피우던 담배를 들켰을 때도, 술에 취해 뭘 해 먹고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을 때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첫 월급 기념으로 빨간 내복을 부모님 앞에 내놓은 날이나, 큰맘 먹고 안마 의자를 선물해 들이던 날에도 손뼉까지 치며 자식 덕에 호강한다고 좋아하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예의 그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혜준 앞으로 남겨 놓았다는 땅도 장례가 다 끝나고서야 알았다. 혜준은 아버지와 가까워지려고 살갑게 말도 걸어보고, 일부러 식사 자리도 마련하곤 했으나 관계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혜준은 아버지를 가까워질 수 없는 집안 어른, 그저 자라는 데 물질적으로 일조한 후원자 정도로 정의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장례 기간 내내 늦은 밤까지 빈소에는 정신없이 조문객이 몰렸다. 개중에는 본인 가족인 양 눈물을 훔치거나, 통곡하는 이도 있었다. 집에서는 입을 꾹 닫고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남들에게는 퍽 따뜻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라고 혜준은 속으로 비아냥댔다.


 유품 정리를 하다가 어머니는 긴 장례에 지쳤는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마저 하자며 대충 정리하던 혜준의 눈에 아버지의 고물 휴대폰이 보였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사드린대도 다 돈지랄이라며 피쳐폰을 고수하던 아버지가 떠올라, 혜준은 심드렁하게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갤러리에도 별것이 없고, 전화번호부도 그저 평범한 지인의 목록이었다.


‘역시 별거 없네’


 이제 그만 자러 갈까 싶어 몸을 일으키면서 문자 보관함을 열자마자 경고 메시지가 떴다. 혜준은 다시 앉으며 경고 메시지를 자세히 확인했다. 메모리가 꽉 차서 더 이상 메시지를 저장할 수 없으니 보관함을 정리하라는 경고 메시지였다.


 수신 메시지도, 발신 메시지도 몇 통 없었는데 문제는 임시 저장함이었다. 메모리가 부족할 지경으로 쓰다 만 문자가 가득했다. 도대체 남들에겐 얼마나 다정했길래, 눈도 침침한 노인네가 무슨 문자를 이렇게 썼다 지웠다 했나 싶어 혜준은 냉큼 메시지 하나를 열었다.


날이.춥다.
뜨숩게입고.
다니거라.


 수신인이 누군지 도통 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에 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음 문자를 연이어 열었다.


첫츌근이냐.
늦찌안ㅎ게.잘.
다녀오너라
내보ㄱ.ㄷㄷㅏ뜻.하구나.
유진엄마가.으자를.
ㅂ.ㅜ러워하더구나.
아주.시뭔하구.좋아.
고맙다.


 보내지 못한 문자의 수신인은 혜준이었다. 몇 번을 쓰다 말았는지,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가 서너 개씩 있었다. 두툼한 손가락으로 작은 휴대폰 자판을 꾹꾹 눌러 담고는, 차마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휴대폰 폴더를 닫는 아버지의 모습이 혜준의 눈앞에 그려졌다. 마음이 종잇장 구기듯 저며오고 쉴 새 없이 바닥에 뚝뚝 떨궈지는 눈물을 그칠 도리가 없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따라 지난 모든 순간이 혜준의 뇌리를 스쳤다. 다정하게 웃어주거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무수히 떠오르는 장면마다 아버지는 혜준을 사랑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넘어진 혜준의 무릎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곤 자전거 뒤를 꽉 잡아주던 손.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비가 내리던 날, 버스 정류장에 나와 우산을 건네곤 앞서 걸어가던 등. 취업 준비가 한창이던 시절 책상 위에 무심하게 놓여 있던 오만 원. 아버지의 갈색 티셔츠 소매 아래로 비죽 보이던 빨간 내복.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온기가 다할 때까지 혜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왼손…


 사진 속에서만 눈을 맞출 수 있는 아버지를 보며, 그제야 혜준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큰 사랑은 일평생 비밀이었던 거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늦게나마 비밀을 알아챈 혜준은 숨 쉴 수 없이 찌그러지는 마음을 붙잡고 밤이 늦도록 멍하니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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