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대하여
길쭉한 판형도, 거친 질감의 표지도, 회색과 노랑으로만 칠해진 그림도, 글자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도. 여러모로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구석이라니. 그림책에 등장할 만한 단어가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제목에 가장 끌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밝고 귀여운 제목이 많으니까. 구석이라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어둡게 느껴졌다. 벽과 벽이 만나 생긴 텅 빈 공간에 까마귀가 서 있다. 이곳이 바로 구석이다. 까마귀는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간다. 침대를 옮기고 조명을 켜고 책장을 놓고 러그를 깔고 화분을 가져온다. 비어 있는 하얀 벽 위에 노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분명한 그림을. 양쪽 벽을 꽉 채울 때까지, 멈추지 않고.
까마귀는 자신이 만든 아늑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거나 가만히 누워 있는다.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한 벽은 마치 원래 있던 벽지처럼 자연스럽다. 글자는 많이 없지만 그림 안에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그림책의 매력이다. 까마귀가 자신의 구석을 채우는 동안 화분은 커다란 잎을 펼치며 부지런히 자란다. 이제 햇빛을 볼 시간이다. 화분과 까마귀에게는 세상과 연결될 일만 남았다. 결심한 듯 벽에 창문을 만들고 힘껏 문을 연다. 창 밖을 열자 지나던 사람이 멈춰 선다. 안녕?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화분은 햇빛을 마음껏 쬐고 까마귀는 또 다른 존재와 조우한다.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순간. 둘의 세상이 넓어지는 순간이다.
표지는 쓸쓸한 회색이지만 안은 따뜻한 노랑으로 가득한 책. 조오 작가의 <나의 구석>을 아이와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떤 날 까마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였다. 다른 날에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내향인이 되었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집에선 최고로 웃긴 친구가 되는 날도 있었다. 마음껏 상상하다 보니 까마귀는 내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 역시 구석에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견디던 때가 있었으니까. 어둡게 느껴지던 제목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나의 구석은 내 마음의 공간. 그곳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 내가 보내는 시간이 나의 모습이 된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하나의 삶을 만든다. 마음을 어떻게 돌볼지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겨울, 모두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나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왔다. 제일 좋아하는 공간에서 제일 좋아하는 글을 쓴다. 내가 선택한 오늘. 나의 하루를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모두 자신의 마음에 가까운 선택으로 채워진 하루가 되기 바란다. 나 역시 아이와 함께 노랑으로 꽉 찬 따뜻한 하루를 만들 예정이다. 각자의 구석에 자신만의 노랑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