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듬을 찾아서
서점 신간 코너에 놓여 있던 <빨리빨리 천천히>라는 책을 읽은 아이가 갖고 싶다고 했다. 내용도 모르고 사준 이 책을 아이는 여러 번 꺼내 읽었다. 오늘 아침, 책장 구석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던 책을 열어보며 생각했다. 이 책은 아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1월 1일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달력과 휴대폰과 노트북 화면에 박혀 있는 오늘. 새해가 밝았으니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고, 알찬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 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대만 작가 장후이청의 <빨리빨리 천천히>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리듬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에만 빨리빨리 문화가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나라도 비슷한 모양이다. 도시에 사는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늘 빨리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서둘러 자라고 한다.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천천히 밥을 먹고 느리게 숲을 산책하고 별을 보다 잠들라고 한다. ‘빨리빨리’와 ‘천천히’의 틈에 끼어 어찌할 바 모르던 아이는 조금씩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 무조건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좋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내가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책을 읽는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잊고 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림책 속 문장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아이의 할아버지가 말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시계 하나가 있다고. 때로는 빨리 가고 때로는 천천히 움직인다고. 너에게 맞는 리듬을 찾는다면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다 좋은 거라고. 이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나의 삶의 리듬은 어느 정도의 템포일까. 빨리빨리와 천천히 중 어떤 속도로 가고 있을까.
쏟아지는 신간과 베스트셀러의 홍수 속에서 부지런히 읽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 모두들 운동도, 자기 계발도, 육아도 잘 해내는 것 같아 부럽다. 나 역시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자꾸 힘이 들어가고 조급해진다. 내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 책이 바로 이 그림책이다. 올해는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도중에 산책하는 시간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히 하기로 했다.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라는 다짐에서 '더'라는 말을 빼면 어떨까. 천천히 가도 좋다. 나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시계가 있다. 힘을 빼고, 조금 느슨한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는 나날을 만들자. 새해에는 나도 아이와 그런 하루하루를 만들 생각이다. 함께 그림책을 열고 조용히 나를 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