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수진 Dec 25. 2023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는 일 년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 나도 어린 시절 그랬다. 교회에 다니지도 않고 성탄절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 울려 피지는 캐럴과 반짝이는 조명, 크고 작은 트리와 들떠 있는 사람들의 표정들. 크리스마스에만 느낄 수 있는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좋아서 12월만 되면 마음이 벅찼다. 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선물을 받는 날. 미지의 세계에서 날아온 산타가 몰래 선물을 두고 간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 어떤 선물을 주실지, 우리 집까지 어떻게 올지 상상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아이는 올해도 할아버지에게 정성껏 편지를 쓰고 맛있는 과자를 접시 가득 담아 트리 밑에 준비해 두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새벽 언제쯤 오실까? 하루하루 착하게 보냈으니까 올해도 선물 주시겠지? 토닥토닥 잠재우며 나도 덩달아 설레는 밤. 아이는 몇 번이나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이맘때쯤 꺼내 읽는 그림책이 바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라는 책이다. 읽을 때마다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에는 딸이 좋아하는 동물들과 가장 좋아하는 날인 크리스마스가 동시에 나온다. 윌로비 씨 저택으로 커다란 트리가 배달된다. 천장에 닿아 꺾일 정도로 큰 트리 끝을 잘라낸 집사는 함께 일하는 애들레이드 양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그녀의 방에도 트리는 너무 크다. 다시 끝이 잘린 트리는 정원사 가족에게로, 곰과 여우와 토끼와 생쥐에게로 간다. 인간에게서 동물로. 커다란 존재에게서 작은 존재에게로. 크기는 점점 작아지지만 모양은 여전히 똑같다. 각자의 집에 딱 맞는 크기로 자리 잡은 트리는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 그 행복의 크기는 다르지 않다. 크리스마스에 마치 기적처럼 모두에게 똑같은 행복이 찾아왔다.

                  

  책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신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트리를 잘라낸다. 돌고 돌아 마지막에는 윌로비 씨 저택 구석에 살고 있는 생쥐 가족의 트리가 된다. 마음에 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진 이들의 밤이 깊어간다. 어떤 나눔은 몇 배의 기쁨이 된다. 의도하지 않은 나눔도 결국엔 모두의 행복이 된다. 크리스마스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그림책이 있을까. 오늘은 마음껏 들뜨고 싶은 날이니까. 한 명도 빠짐없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날이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평범한 하루일지도 모른다. 왜 이리 유난스럽게 하루를 보내느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분위기에 살짝 기대어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휴대폰을 열어 연락이 뜸했거나 소원해진 사람들을 찾아보자. 괜히 무뚝뚝하게 굴었던 가족이나 친구도 좋다. 새해인사를 끼워 넣어 안부를 전하거나 깜짝 선물을 보내보면 어떨까.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이 문장 뒤에 쑥스러움을 숨겨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니까.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니까.

     

  그렇게 전한 마음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온다. 용기를 낸 행동이 스스로를 위한 일이 된다. 내가 먼저 주변을 돌아보면 결국 나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늘 아침, 미뤄두었던 연락을 두 눈 꼭 감고 먼저 했다.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답장도 받았다. 몇 년 만에 나눈 짧은 문자였지만 마음에 충분한 온기가 돌았다. 그렇게 하나씩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들여다볼 생각이다. 크리스마스에 기대어. 어떤 핑계를 대고 싶다면 오늘이 가장 제격인 날일테니까.











이전 04화 연결: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