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결되어야 해
이 책은 우연히 지적장애 학부모를 위한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가벼운 그림책 수업인 줄 알고 갔는데 당황스러웠다. 그곳에 있던 부모들은 아이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여기 앉아 있어도 될까, 다시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사이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사연을 들으며 눈물이 났다.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서로를 위로하고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그림책으로 연결되는 이들을 지켜본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꼭 읽어보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날의 공기와 조용히 이어지던 목소리들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은 모두 같으니까. 그날 이후 이 그림책은 내게 특별한 책이 되었다.
와이파이가 그려진 표지를 열면 알쏭달쏭한 그림이 펼쳐진다. 빨간 첨탑과 파란 로봇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소통을 말이 아닌 디지털 신호로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현재의 우리에게 ‘연결’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휴대폰, 카카오톡 같은 비대면의 소을 떠올리게 하니까. 파란 로봇 아이는 탄생과 동시에 빨간 첨탑 엄마와 연결된다. 서로에게 장착된 와이파이 기기를 통해 선이나 숫자, 그림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점점 자라는 동안 파란 로봇은 신호에 응답하지 않거나 센서를 꺼버리기도 한다. 엄마는 변함없이 신호를 보낸다. 걱정과 응원과 사랑을 보낸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또 다른 탑과 새로운 신호로 연결 된다. 무한한 가능성이 가득한 새로운 미래로 향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대로 이 그림책에 담겨 있다.
아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기호 같은 그림을 어려워할 거라 생각했다. 딸은 있는 그대로 그림을 받아들였고 말하는 바를 알아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우리는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서점에서 책을 사 온 날부터 이 책을 몇 번이고 열어보았다. 아이는 자신만의 신호를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자신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너만의 신호로 너의 세계를 만들어 가렴. 먼 훗날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도 언제나 어디서나 너와 나의 신호는 계속될 거야.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울컥했다. 매일 새싹처럼 자라나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나. 사랑만 주고 싶었지만 눈물도 상처도 많이 준 엄마였다. 그래도 아이는 웃음과 행복으로 응답해 주었다. 이 책을 열고 닫는 동안 아이의 세상은 어떤 신호로 채워지고 있었을까. 그 넓고 커다란 세계를 전부 들여다볼 순 없지만,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지켜볼 수 있었다. 얼굴 가득 퍼져나가는 기쁨과 감동, 슬픔과 여운 같은 것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도, 많은 것이 시시각각 변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서로에게 사랑을 말해야 한다. 지치지 말고 부지런히,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아이가 기쁘거나 슬플 때, 위로나 응원이 필요한 순간에 나는 기꺼이 연결될 것이다. 따뜻한 사랑의 신호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