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가는 길을 잃지 않을 거야
아이를 꼭 안고 있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말이 있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엄마에게 왔나. 품에 안긴 딸을 볼 때마다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엄마라니. 이 조그만 생명체가 내 아이라니.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기들은 엄마 뱃속 시절을 기억한다고. 그때 들었던 소리와 말, 느낌을 불쑥 얘기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대체 어떤 능력을 지녔길래 그걸 다 기억할까. 뱃속에서 발차기를 하던 딸도 그 시절을 기억할까. 내심 기대해 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무렴 어때,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데.
핫토리 사치에 작가의 <나는 태어났어>는 예쁜 그림과 다채로운 색의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다. 책을 펼칠 때마다 뱃속 시절을 기억한다는 아기들이 떠올랐다. 엄마 무릎에 누운 아이가 얘기한다. 자신이 어떻게 엄마에게 왔는지 그 긴 여정에 대해. 우주의 별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각자 살고 싶은 곳을 스스로 정한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안개를 헤치며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무섭고 두렵고 어두운 것들을 통과하며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용감한 아이들. 예쁜 건 예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아이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귀한 존재들. 세상 모든 탄생의 순간이 아름답게 그려진 책이다. 드디어 만난 아이들과 엄마들은 다 함께 기쁨의 춤을 춘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아이가 태어난 여름밤이 떠올랐다. 끝없는 어둠을 통과해 나에게 온 딸과 만나던 그 밤.
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도 긴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쁘면서도 슬프고, 행복하면서도 아픈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 도착한 아이들은 용감하게 우리를 찾아낸다. 아이와 부모의 만남은 다시없을 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까맣게 잊는다. 처음 안았을 때의 무게감, 감촉, 눈 맞춤, 감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겠다던 약속을 뒤로한다. 매서운 눈으로 잔소리를 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오늘만큼은 아이와 함께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면 어떨까. 그즈음 썼던 일기도 좋다. 그곳엔 분명 빛나는 말이 가득할 것이다. 잊고 있던 아름다운 얼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늦은 밤, 아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내 얼굴 옆으로 자신의 머리를 맞대고 누운 채. '엄마, 내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줄까? 난 저 하늘 위 구름에 친구들과 앉아 있었어. 어느 집에 갈까 고민하다가 엄마를 발견했어. 다정하게 날 반겨줄 것만 같았지.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거야.'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말을 내뱉고 딸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얀 구름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기들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모두 자신에게 딱 맞는 집을 잘 찾아가고 있을까. 드디어 만난 모두가 기쁨의 춤을 오래도록 추면 좋겠다. 잠든 딸의 볼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엄마는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 널 사랑할 준비만큼은 이미 되어 있었어. 길 잃지 않고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엄마를 선택해 줘서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