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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15. 2024

고함쟁이 엄마

세상 모든 엄마의 반성문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뒹굴거리는 하루하루가 행복하지만, 호르몬의 변화나 피곤함을 이유로 불쑥 화가 올라올 때가 있다.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다.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이미 뱉은 말을 멈추지도 못하고 주워 담지도 못한 채 결국 화를 내고야 만다. 눈물이 그렁한 아이를 보는 순간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 작은 아이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유타 바우어 작가의 <고함쟁이 엄마>는 유명한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책의 시작부터 엄마 펭귄이 크게 고함을 친다. 놀란 아기 펭귄의 몸이 팡하고 터져 날아가버린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인데 좀 잔인한 거 아닌가. 초보 엄마였던 나는 그림에서 한번, 너무 내 모습 같은 엄마 펭귄의 모습에 두 번 당황했다. 세상 곳곳에 흩어진 아기 펭귄의 조각들을 찾아다닌 엄마 펭귄은 전부 모아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아가야, 미안해. 마음을 산산조각 낸 것도, 조각난 상처를 수습하는 것도 모두 엄마다. 딸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다시 보듬는 것도 바로 나인 것처럼.


  나는 엄한 아빠와 다혈질 엄마 밑에서 자랐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짜증이나 눈물, 이따금 화를 내는 정도였다. 아이를 낳고 다짐했다. 내 감정을 아이에게 쏟지 않겠다고. 단점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나는 나, 아이는 아이. 우리는 각자 다른 인격체임을 잊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딸은 나와 너무 많이 닮아있었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보일 때마다 괴로웠다. 그때마다 ‘너만큼은 나와 다르게 자라야 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화를 내고 다그치며 자꾸 딸을 바꾸려고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는 그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는데 도통 잘 생각이 없다. 이제 그만 자자 라는 말을 반복하다 오늘도 또 버럭 화를 냈다. 좀 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알면서도 힘들고 지친 내 사정만 늘어놓는다. 아이는 콧물을 훌쩍이다 잠이 든다. 매일 반복하는 바보 같은 모습. 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모순된 내 말과 행동을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그때마다 부끄럽다. 나는 고함쟁이 엄마이면서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진 아기 펭귄이었다. 몸만 자란 미완성의 어른. 아마 나에겐 수많은 반성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혼낼 때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 말들이 진짜 아이에게 필요했을까?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인정해 주고 기다려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좀 더 기다려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넸으면 좋았을 텐데. 책장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고함쟁이 엄마> 책을 꺼낸다. 어쩌면 작가는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까만 밤,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는다. 내일은 다정한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는 매일 반짝반짝 빛을 내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미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딸에게 화낼게 뭐가 있나. 결국 모든 건 내 마음의 문제다. 피곤하지 않게 일찍 자고, 지칠 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한다. 잠에서 깬 아이가 꼬물거리며 내 옆구리로 파고든다. 엄마, 어제 일찍 자지 않아서 미안해.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우리는 두 마리의 펭귄이 되어 서로를 꼭 껴안는다. 미완성의 엄마의 어깨를 마음 넓은 아이가 토닥인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의 사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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