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분의 식사

by 현수진



밥 먹었어? 밥 잘 챙겨 먹어.

우리 밥 먹자, 언제 시간 돼?

보고 싶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 외로운 삶 속에서 나의 밥-나의 생명-을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마음이 더워지고 코 끝이 찡해지는 일이니까. 이따금 밀려드는 헛헛함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뭐해? 우리 밥 먹자.’라고 연락할 수 있는 이가 당신에게는 있는지. 타인과 마주 앉아 한 끼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호감이 있고,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내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와 의미 있는 하나의 지점을 만드는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쌓는 시간 속에 수많은 마음이 켜켜이 쌓여갈 테니.




남편도 아이도 분주히 집을 나서고 나면 빵을 곁들여 커피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는다. 결혼을 하기 전이든 하고 난 이후든 혼자 밥을 챙겨 먹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저녁에는 가족을 위한 식사를 열심히 준비하지만 요리를 하고 나면 늘 입맛을 잃기 일쑤다. 세상에는 눈과 입이 즐거운 음식이 넘쳐나고, 나는 그런 음식 앞에서 너무나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점점 그런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어 슬프다. 마스크를 내리는 게 부담스러우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약속 자체가 일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배달이나 포장, 혹은 라면이나 인스턴트로 대충 끼니를 때운다. 몸에 음식을 아무렇게나 넣고 나면, 마음에 저절로 허기가 진다. 혼자 먹는 일이야 무덤덤해질 수 있지만 하나 둘 마음속에 생기는 구멍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하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허함이 구멍 사이를 제멋대로 헤집고 다닌다. 이 상태로는 음식을 넣어봤자 계속 허기가 질 것이다. 제대로 된 식사로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사람의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밥벌이를 함과 동시에 스스로 ‘잘’ 챙겨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걱정하거나 챙겨주지 않아도 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살뜰히 돌본다 한들, 결국 내 몫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 때문에 자꾸만 주저앉게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마치 겨울잠이라도 자는 듯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부지런히 이어 온 일상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한 달 여의 시간을 멈춰 있었다. 책도, 글쓰기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새로운 시도는커녕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이사를 마치고 아이는 씩씩하게 입학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정리되지 않은 짐들과 뒤섞여 집안 곳곳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오래된 사과처럼 마음이 퍼석거렸다. 번아웃이라도 온 걸까. 의욕을 잃은 채 흐물거리는 몸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잘 구워진 크로와상에 커피를 곁들여 먹던 어느 아침, 와사삭 바사삭하는 소리가 그날따라 리드미컬하게 들렸다. 소리에 집중하며 먹다 보니 몸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내친김에 언젠가 읽다 멈춘 책 한 권을 꺼냈다.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며 문장을 함께 씹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정신없이 먹고 읽고를 반복하다 보니 저절로 한 달 전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멈춰버린 일상을 다시 시작하려면 ‘먹는 기쁨’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사소한 행복을 부지런히 연결시키다 보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을 집중했다. 하루에 한 번,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떡볶이를 만들거나 초밥을 포장하기도 하고, 뜨거운 감자탕을 땀을 내어가며 먹었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거창하게 준비했으나 반절도 못 먹고 남긴 접시가 우스꽝스러워 혼자 킬킬 웃던 날도 있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집중하다 보니 좋아하는 음식, 책, 공간, 날씨, 지금 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일상은 아주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돌아왔다.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를 좀 더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아직은 낯선 이 동네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며 자신을 응원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카페의 마스카포네 크림 라테, 초밥 도시락, 입맛에 딱 맞는 떡볶이, 알맞게 튀겨진 튀김, 리듬감 있게 바삭거리는 빵 같은 행복한 음식들로 비어 있던 마음의 구멍을 메우고 있다. 수시로 주저앉고 헤매는 나를 위해 되도록 행복해지는 식사를 자주 준비해야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단 한 사람, 나를 위한, 딱 한 사람 분의 식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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