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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Oct 17. 2021

사랑이 배달되었습니다

 


 냉장고 서랍 칸에 동그란 귤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마지막 남은 귤 다섯 개를 모두 꺼내 아이에게 간식으로 내어주었다. 친정에서 정성껏 농사지은 맛있는 귤이다. 아껴 먹었는데도 아이가 좋아하는지라 벌써 바닥이 났다.


“우와, 외할머니 귤이다!”

아이는 행복한 얼굴로 입안 가득 귤을 담으며 묻는다.

“외할머니 귤 더 먹고 싶다. 택배 언제 도착해?”

“아까 곧 도착한다고 문자 왔어. 조금만 기다려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빼꼼 현관문을 열어보지만 아직이다.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도착할 선물을 기다리는 듯 아침부터 몇 번이나 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엄마로부터 두어 달에 한 번씩 사랑을 배달받는다. 종류는 다양하다. 배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갈치, 옥돔, 전복, 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종류별로 담근 맛깔난 김치와 밑반찬. 뭐 필요한 거 없냐 묻는 일은 거의 없다. ‘내일 집으로 택배 하나 갈 거야, 맛있게 먹어'라는 짧은 전화만 불쑥 올뿐이다. 우리가 서먹서먹하거나 사이가 나쁜 모녀지간도 아닌데 왜 택배를 보낼 때는 이렇게 기색 없이 툭 보내는 건지, 언제나 의아했다.



 처음에는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나 절로 입맛을 돌게 하는 정성스러운 반찬을 받고 나면, 연고 없는 곳에서 지내는 일상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졌다. 이제 그만 보내라 전화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택배를 보냈다. 갈치며 옥돔이며 전복이며 값비싼 것을 딸에게 보내느라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괜히 싫었다. 이제 우리가 직접 사 먹을 테니,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드시라 말해도 늘 막무가내였다.

 


 뚱한 표정으로 택배를 여는 내 옆으로 남편이 다가와 슬쩍 한마디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이 사랑을 반갑게 받는 것이 지금의 내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맞는 말이다. 친정은 제주에 있고, 나는 한참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니 딸에게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으로 택배가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자꾸만 불편한 걸 어쩌란 말인가.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미안함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큰 부담이 된다는 걸, 엄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의 첫째로 태어났기에 받는 사랑이 늘 양에 차지 않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부단히 채워주려 노력하셨겠지만, 마음에 텅 빈 공간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고작 두 살 터울이어도 누나였으므로 동생의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거나 집에 돌아온 뒤 간식이나 밥을 챙겨주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다. 동생을 챙기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빠르게 철이 들어갔다. 일하는 부모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되도록 누구에게든 예의 바르고 조용하게 굴었다. 스스로 어른스러워야 한다 생각했던 나는 허한 마음을 둘 곳 없어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저절로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종종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사실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떼도 쓰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에 대한 서운함과 고마움, 사랑과 미움으로 뒤죽박죽 뒤엉킨 감정 속에 깊이 침잠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사랑이 도착한다. 언제나 자신의 사랑을-사랑이라 여기는 것들을 정성껏 담은 택배를- 보낼 타이밍을 귀신같이 아는 엄마.

 ‘그간 많이 주지 못한 사랑을 늦게나마 이렇게 보낸다. 사랑한다 딸아, 너를 참 많이 아낀다.’

택배를 열고 물건을 꺼내다 보면 엄마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리는 듯하다. 자신이 뒤늦은 사랑을 열심히 보내고 있다는 걸 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후회와 미안함, 사랑, 그리움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함께 배달된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상자 안에 담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까닭은 그 투박함에 있을 것이다. 흔히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진심을 알 수 없다지만, 어떤 마음은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감정을 품고 있기도 하니까.

 



 “엄마, 외할머니는 우리를 참 사랑하셔. 이렇게 맛있는걸 잔뜩 보내주시잖아. 정말 사랑이다, 그렇지?”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러엄 하고 대답한다. 아침부터 기다리던 새로운 귤 한 상자가 현관 앞에 도착했다. 하나씩 정성스레 닦고 냉장고 한 칸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오래도록 비어있던 마음의 문 하나를 꽉 채우고 문을 닫는다. 남아있는 마음의 방도 앞으로 이렇게 채워져 가겠지.

  

‘고마워 엄마, 잘 먹을게!’

늘 보내던 문자 뒤에 망설이다 오늘은 한마디를 더 붙이기로 한다.

‘보고 싶다 엄마.’

스마트폰이 서투른 엄마가 짧은 문자로 대답한다.

‘맛있게 먹어. 다음에 또 보낼게.’  

  

 엄마로부터 되도록 오래오래 이 사랑을 받고 싶다. 받기만 하느라 늘 미안했던 마음은 뒤로 하고, 엄마의 사랑으로 부지런히 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싶다. 어리광을 이제야 부리는 기분이 들어 쑥스럽지만, 이젠 그래도 되지 않을까? 나의 마음 어딘가에 구겨져 있던 서운함 하나를 다 뜯은 상자 사이사이에 끼워 내다 버릴 참이다. 이제는 던져 버려도 될 마음이니까. 오늘 배달된 택배 덕분에 사랑으로 마음을 채운 나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마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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