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수진 Oct 12. 2021

당신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나요?



 누군가 내게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 물으면 ‘가을’이라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지만, 왜 그렇게 좋으냐 이유를 물어오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뭐라고 대답해야 가을에 대한 나의 애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견디기 어려운 뜨거운 여름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해방감, 아침저녁으로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폐를 시원하게 뚫는 듯한 깨끗한 공기, 초록에서 변하기 시작하는 계절의 색-노르스름하고 붉으스름한 색들의 콜라보는 언제나 아름답다-, 유난히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너무나 걷기 좋은 온도, 하루 종일 따뜻한 커피가 어울리기 시작하는 날들, 부들부들한 니트의 감촉, 밤 산책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상쾌함. 

 이런 말들로 충분한 대답이 될까? 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들며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라 답하고 싶지만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이에겐 무용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큰 기쁨을 주는 계절. 결국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가을은 모든 게 다 좋은 계절이지, 그냥 다 좋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며 대답을 얼버무리고 만다.




 여름의 끄트머리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나는 더운 날씨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로 여름을 버티곤 했다. 가을은 대체 언제 오는 걸까.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계절을 목을 기다랗게 빼고 애타게 기다렸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오기만 한다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많은 것들을 하리라. 항상 똑같은 다짐을 하며 어느 골목 언저리쯤 왔을까 자꾸만 살펴보게 된다. 아쉽게도 가을은 더디게 오고 빠르게 사라진다. 이 짧은 계절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보내보려 한다.

 부지런히 산책을 해야지. 추워지기 전에 동네 곳곳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을 생각이다. 미뤄두었던 책을 높이 쌓아 이런저런 주전부리와 함께 맛있게 읽어야지.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혹은 산책하다 만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에 딱인 날씨가 이어질 테니. 아이와 함께 많은 곳을 다녀야지. 전시회나 체험학습을 다니기 좋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니까. 남편에게 멀리는 못 가더라도 당일치기로 바다와 산과 숲을 보러 떠나자 이야기해야지. 그다음 이어질 기나긴 추위를 오래 버틸 추억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바로 가을이므로.



 열어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서 슬슬 차가운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드디어 왔구나! 하며 밖을 내다본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온 순간인가. 계절의 시작을 알아챔과 동시에 차오르는 순수한 기쁨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의 백미는 단연  산책이다. 어스름하게 밤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카디건을 걸치고, 운동화를 챙겨 신고 집을 나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엄마도 아내도 아닌  자신으로 있을  있는 유일한 시간.    나의 일상에 너무나 짧게 머무는 순간이므로 1 1초도 허투루   없다. 이어폰과 신용카드  장은 필수품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들으며 걷다 보면 강아지와 산책하는 가족, 운동하는 사람들, 연인, 학생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혼자만의 상상을 펼치며 들뜬 마음으로 걷고  걷는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벤치에 털썩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둘러보는 가을밤의 풍경은 낮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설레며 걷던 밤이나, 화산처럼 폭발해 버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맥주를 사러 맹렬히 걸어가던 밤이 절로 떠오른다. 좋아하던 사람과의 통화를 끊지 못하고 ' ' 인사만  번도 넘게 하던 밤이 있었는가 하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놀  없어 무작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던 밤도 있었다. 지나온 가을밤 곳곳에 나의 흔적이 있다.  산책은 수많은 가을밤의 나와 잠시 잠깐 만나는 순간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앞으로 나는 살면서 이 사랑스러운 계절의 밤을 과연 몇 번이나 보낼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해오지만 뭐 어떠랴. 그런 것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이 계절의 밤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요즈음의 나는 걷다가 떠오르는 많은 것들을 적어둔다. 놓치기 아까워 다듬고 다듬어 글로 남겨 둔다. 이번 가을에도 지치지 않고 부지런히 글을 쓰려한다. 단순히 밤에 혼자 걷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던 내가, 이 계절을 보내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가을을 기쁘게 맞이하고, 즐기고, 보내주고 싶다.



 누구나 자신만의 계절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가. 그 계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며 계절에 대해 도란도란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가을밤이다.






이전 07화 도산공원의 아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