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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Sep 27. 2021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

  


 저녁시간은 늘 매섭게 몰아치는 폭풍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다. 1분 1초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을 간단히 정리한 뒤 재빨리 아이를 씻긴다. 엄마이자 아내가 된 뒤로 두세 가지 일쯤은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 지겹게 반복되는 하루의 틈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부엌 끄트머리에 앉아 오늘의 글을 쓴다.



 아이는 소파에 기대어 요즘 푹 빠진 책 시리즈를 읽고, 남편은 야근이다. 위이잉 빨래 돌아가는 소리와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듯한 키보드 소리의 조화가 절묘하다. 마무리 짓지 못한 집안일들이 자꾸만 눈길을 낚아 채지만 애써 무시하고 까만 글자를 써 내려간다. 자투리 시간을 모아야만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삶이다. 어떻게든 붙잡고 늘어지지 않으면, 다시 한번 쓰지 않는 나에게 틈을 내어줄 것이 분명하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적어놓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또 골라낸다. 하루치만큼의 글을 쓰고 퇴고를 한다. 글쓰기에도 정답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간의 인생을 살며 얻은 건,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삶이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주어진 하루를 그저 담담히 살아낼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글쓰기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출처- 언플래쉬


 계기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막상 쓰기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이 글이다. 빗물에 강둑이 넘치고, 컵에 가득 채운 물이 넘치는 것과 비슷하다.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둘 곳이 없어지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에만 머물던 이야기들이 글로 모습을 바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분명한 영향을 끼친 세명의 인물이 있다.

 


 처음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다. 단호하지만 온화한 성품을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분이셨다. 덕분에 참고서에서 강요하는 해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문학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무실로 향했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수진아, 너는 앞으로 글을 썼으면 좋겠다”

 하시던 선생님. 뜬금없는 이야기에 나는 눈만 꿈뻑이며 서 있었다. 왜요?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뒤에 이어지던 말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작은 씨앗은 그때 싹트지 않았을까. 지금은 반대로 묻고 싶다. 왜 나를 써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셨는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막막해질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는 강력한 응원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다음은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다. '언니가 언젠가 글을 쓰면 꼭 그 책을 사고 싶다' 라던 말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쓰거나,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싸이월드에 올리곤 했다. 꾸준히 읽고 있던 후배가 몇 년 만에 대뜸 전화를 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쑥스러운 마음에 에이 내가 무슨 책이야, 그런 건 꿈도 꾸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두 번째 씨앗은 분명 그때 자리 잡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참 숭고하고 귀한 작업이라 여겼다.(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고개를 저었지만 후배의 전화는 용기를 주었다. 쓸모없는 사진이나 글은 없다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나 할까.

 


 마지막은 남편이다. 연애를 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글을 쓰라고 이야기하던 사람. 결혼을 기점으로 너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줄 테니, 그 사이 인세를 받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며 허허 웃는 사람. 글을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확연히 다른 일이니(남편은 글을 써본 적도 없는데 이 진리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무엇이든 일단 써보라며 기분 좋은 격려를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오늘도 쓰는 틈을 마련해주려고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나서는 뒷모습이 든든하다. 언젠가 인세를 받게 된다면 꼭 당신에게 반을 나눠주리라. 이 마음이 그때까지 변하지 않길 바라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인세를 받는 사람이 된다면 제일 좋겠지만.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음악 하는 남자 친구를 꽤 오래 만났었는데, 그는 나의 글에 대해 종종 박한 평가를 내리곤 했다. 지금이라면 무슨 꼰대 같은 이야기냐며 독설로 받아칠 수 있었겠지만, 그 시절의 난 마음이 연약하고 자주 흔들렸다.



예술을 하려면 어느 한쪽은 내려놓고
올인할 수 있어야 해.
다양한 경험을 해야지.
넌 너무 착하게 살아와서 불가능해.
 
용기가 없어서 사진도 글도
절대 시작할 수 없을 거야.
차라리 노래 가사를 쓰는 내가
글이라면 더 잘 쓸 수 있을걸?
 
네가 쓰는 글은 너무 착해.
날 선 문장이 없으니 읽는 재미도 없어.
이런 감성적인 글은 지천에 깔렸는데
누가 찾아 읽겠어.



  모진 말들은 화살이 되어 날아와 마음속에 꽤 오래 박혀 있었다. 어떤 문장을 써도 평범하고 무난하게 느껴져 점점 쓰는 게 어려워졌다. 찾아 읽는 사람이 없는 글을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글쓰기가 무의미해졌다. 한계 안에 자신을 단단히 가둬 버렸다. 쓰고 싶은 마음을 깊은 곳에 숨기고, 부유하듯 떠도는 삶을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다. 누가 누구를 평가한단 말인가. 허나 반박하지 못했던 건 나 역시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글은 평범했고, 소소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이 되기엔 너무나 작고 작은 글이었다. 쓰는 사람이란 세상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누구나 쓸 수 있다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엄청난 사람들의 글만이 제대로 된 글이라 생각했다. 일기 같은 글을 쓰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길어졌다. 쓰는 사람이 되겠다 다시 용기를 내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결국 쓰고 있다. 멈추지 않고 매일, 할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내가 지속하는 유일하고도 기쁜 습관이 되었다. 소박한 이야기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동안 조금씩 마음도 단단해졌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을 뿐인데, 고마운 사람들의 다정한 격려를 받는 나날이다.

 나는   있는 사람이고, 쓰면서 살아갈 사람이다. 나의 글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남편의 바람대로 언젠가 책을  인세를 받고, 우리 엄마 최고! 하는 아이의 칭찬도 받고 싶다. 쓰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앞으로의 나의 여정을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스스로 주변을 밝히는, 나만의 빛이 분명히 있다는  알기에 오늘도 즐겁게, 기꺼이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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