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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Aug 28. 2021

용감한 사마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간식거리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흰색 줄무늬 선 위로 갈색 사마귀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모두 핸드폰 삼매경이다. 나는 다시 한번 횡단보도를 살폈다. 분명하다. 갈색의 작은 생명체가 필사적으로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양 손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공격할 기세였지만, 다리는 바들거리며 위험천만한 그곳을 건너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놀이터나 건물 창문에 붙어 있는 곤충은 일상에서 종종 만나곤 하지만, 여긴 4개의 횡단보도가 동시에 열리는 교차로 한복판이다. 본래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 사마귀가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가 싶어 뚫어져라 보다가 순간 헛웃음이 나온다. 시트콤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왜 아무도 사마귀를 눈치채지 못하고 나만 발견한 거지? 풀 하나 없는 도로에 사마귀가 왜 등장한 거야? 그나저나 사마귀는 언제부터 이러고 있는 걸까?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나는 웃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출처- 언플래시


 이대로 놔두면 죽을 것이 뻔하고, 사마귀를 발견한 이상 모른 체 지나가는 것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사마귀 꽁무니를 두 손으로 잡아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설령 손으로 잡는다 해도 사마귀는 다시 파드득 날아오를 테고, 나는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겠지. 그럼 사마귀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이상한 여자가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 부끄러운 상황은 별로 만들고 싶지 않다. 고민 끝에, 그대로 서서 사마귀의 행보를 지켜보기로 했다.     



 사마귀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잘도 피해 다녔다. 엉성한 자세로 겅중거리며 천천히, 신중하게 앞으로 향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가, 멈췄다. 위험하다 싶으면 기다리고, 잠잠해지면 다시 한 발 내디뎠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 용감한 사마귀였다. 갑자기 큰 트럭이 등장했을 땐, 차마 볼 자신이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실눈으로 사마귀의 생사를 확인하면 기특하게도 녀석은 험난한 도로를 묵묵히 통과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통과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기특했다.

 


 어떻게든 내가  있는 이곳까지 넘어오기를. 인도는 안전할 테니 어쩌면 나도 용기를 내서 너를 풀숲까지 데려다줄  있을지 몰라. 횡단보도 한편에 서서 진심으로 사마귀의 무사를 빌었다.  번쯤 신호가 바뀌는 동안, 사마귀는 마침내 인도에 올라섰다. 특유의 겅중거리는 자세를 유지하고 길을 건넌 녀석은, 순식간에 커다란 나무 쪽으로 달려갔다. 무서웠던 것이 틀림없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죽음이 두려운  당연한 일이었다.        


출처- 언플래시


 왼손엔 무거운 장바구니를, 오른손엔 이 진귀한 광경에 대해 메모해두려고 핸드폰을 들고 멀뚱히 서 있던 나도 드디어 긴장이 풀렸다. 후아-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너는 멋진 사마귀야. 정말 용감했어. 나도 너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떨어져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없던 때가 있었어. 원하는 대로 절대 흐르지 않는 삶을 휘적거리며 살다 보니, 가끔은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어.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하고 화를 내기도 했고, 역시 나는 안돼,   없는 인간이야 라며 자책도 이어졌지. 하지만 너는 기어코 앞으로 나아갔잖아. 아주 작은 존재인 네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순간이었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너를 열렬히 응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 진짜로 응원하고 싶었던  네가 아니라 나였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가도 된다고, 씩씩하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나 . 네가 앞으로도  무사하다면,  역시 아무리 외롭고,  내려놓고 싶은 날이 와도 견딜  있을  같아. 그러니 부디 삭막한 빌딩과 아파트 사이에서  건강히 살아남길 바라.

 


  도시 어딘가에 작은 존재가 용기를 품고 숨어있다. 마음이 헛헛해지면 혼자 떠올리며 기댈  있는, 비밀스러운 친구가 생겼다.  사실이 너무나 든든해 생각만으로도 뭉클하다. 불안한 밤이 이어져도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밤을 무사히 통과할  있을 것이다. 오직 나만 알아챈  작은 생명체가 오늘도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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