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존재를 좋아한다.
온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부르거나, 한음 한음을 아까운 듯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 보자마자 완전히 압도당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일생, 오소소 소름이 끼치는 문장을 써낸 작가의 고뇌 같은 것. 엄청난 재능이 있어도 안주하지 않고, 차분히 집중하는 존재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미련스럽게 노력하는 존재들. 내가 해내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던, 묵묵히 자신만의 걸음을 걷는 사람들. 어쩌면 나는 꿈을 이뤄낸 사람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런 존재들을 매우 아낀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되도록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일상 곳곳에 그들의 빛나는 보물을 숨겨 둔다. 음악 속에, 읽는 책 속에, 걷는 생각 속에,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속에, 그리고 혼자 삼키는 마음속에. 멀게만 느껴지는 그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용기를 내서 쓴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무작정 노트북을 연다.
나는 작가가 아니므로 애쓰는 존재가 된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하나 수많은 고민이 떠오르고 마음이 막막해진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거나, 겨우 완성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의 한계를 느낄 때면, 다 접어두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자신과 타협하며 조화롭게 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어려운 동시에 기쁨이 있다. 글을 쓰는 동안의 나는, 끝나지 않는 집안일의 벽 앞에서 한숨 쉬는 엄마도 아니고, 가족의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아내도 아니다.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열심히 애쓰다 뒤돌아보면, 글을 쓰는 시간이 내가 나를 가장 아끼는 시간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글쓰기를 통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기쁨이다.
매일 싱크대 옆 식탁 끄트머리에 앉아 글을 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틈이 나면 어디든 앉아서 쓴다. 노트북에 쓰기도 하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해 동네 카페에서도 쓴다. 쓰다 막히면 책을 읽고, ‘쓰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경외심을 동시에 느끼고, 다시 쓴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이 모여서 뭐가 되긴 할까 하면서도 읽고, 고치고, 또다시 읽고 고치며 하루치만큼의 글을 쓴다. 오늘도 무던히 애를 쓰며 한 편의 글을 쓴다. 진작 시작하면 좋았을 애씀이다.
무심코 흘려보낸 지난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썼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1그램 정도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이므로. 내 머릿속, 마음 한구석, 손 끝 하나하나의 움직임, 눈의 시큰함, 어깨 뭉침, 허리의 묵직한 통증, 손목의 무거움을 견디며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오늘의 나는 무엇을 느꼈나,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렇게 써내려 가다 보면 결국 나는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라는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
쓴다는 건, 어떤 색깔의 목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다. 자기반성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글쓰기가 가장 마음에 든다. 때문에 오늘도 애쓰는 존재가 되어 내 마음의 문을 열심히 두드린다. 운이 좋은 날엔 그 문이 잠시 열리는데, 살며시 들어가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 들고 온다. 그리고 노트북 하얀 화면 위에서 숨겨둔 이야기 속의 나와 만난다.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풋내 나는 어린아이가 그곳에 있다. 나는 아이의 구석구석을 조용히 살핀다. 어린 나는 이런 얼굴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구나.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지? 나는 어떤 얼굴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나. 그 생각의 간격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먼 훗날의 내가 지켜보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그때의 내가 지치지 않고 여전히 애쓰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부디 글쓰기에서 멀리 도망치지 않길 바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매일 쓰다 보면 무언가는 남지 않을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솔직한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오래도록 애쓰는 존재가 되겠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