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각자의 낭만

by 현수진



록과 인디밴드, 포크송을 즐겨 듣던 아가씨는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사가 없는 조용한 연주곡을 좋아한다더니 딱 제 모습이네요. 저는 다를 줄 알았습니다. 아줌마가 되어도 다양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잊지 않고 살 줄 알았지요. 최신 가요는 물론 지나간 7080 노래도 듣지 않는 요즘입니다. 이미 일상에 집안일과 아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소음이 존재하니 오롯이 쉬기 위해선 잔잔한 음악 이외는 모두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은근슬쩍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추억에 잠기고 싶어도

"엄마, 나 이 노래 말고 트롤 OST 듣고 싶은데. 그거 틀어줘"

라는 한마디에 다급히 끄기 바쁩니다.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아이의 작은 입이 예쁘니 노래를 듣고 싶던 나의 마음 따윈 어딘가에 내던져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종종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무덤덤해진 채로 살아가고 있었지요.



저는 청각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듣는 것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곧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몇 시간 동안 한곡을 늘어지게 들을 때도 있고 마음에 든 앨범은 한 달 내내 듣기도 하지요. 그렇게 진득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비로소 이 곡을 만든 사람과의 아주 짧은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그림이나 사진, 영화, 책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다릅니다. 너무나 찰나인 탓에 예민하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어쩌면 단순히 엄마가 되어서가 아니라, 최근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에 피곤함을 느껴 귀를 닫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너무 많은 자극은 사람을 지치게 하곤 하니까요. 악기의 다양한 소리, 멜로디의 아름다움, 가사가 주는 감동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공중분해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노래가 많아졌습니다. 세상은 더 바쁘게 돌아가고, 음악은 쉴 새 없이 진화하며 쏟아져 나오지만 저는 오히려 듣지 않고 가만히 멈춰있었습니다.




최근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인 슈퍼밴드 2의 종영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에 유튜브에서 좋아하던 밴드의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보았습니다. 두어 개 검색했을 뿐인데 명석하기 그지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제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차례로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었지요. 가장 좋아하던 밴드의 노래가 화면이 펼쳐졌는데 세상에, 그곳엔 12년 전이라는 글자가 너무나도 당당히 표시되어 있더군요. 밴드의 첫 앨범이 나온지는 사실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 영상을 올린 시점이 12년 전인가 봅니다. 12년이든 20년이든 숫자가 주는 놀라움은 똑같았습니다. 음악은 늙은 기색 하나 없이 그대로인데 혼자만 수십 년의 시간을 통과해 알아챌 새도 없이 나이를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기타와 드럼으로 시작하는 전주를 듣기만 해도, 통기타로 아련히 시작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아직도 록 페스티벌에 가서 온 힘을 다해 뛸 수 있고,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에너지를 마음 한편에 품고 살고 있는데. 야속한 시간은 어느 틈에 저를 오늘 이 자리로 데려다 놓은 걸까요.



15년 전 즈음의 저는 일본 어느 작은 동네의 중고판매점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몇 군데의 판매점을 빈들빈들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시디를 저렴한 가격에 발견하는 것이 그 시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발견하는 익숙한 목소리는 또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차곡차곡 모으던 시디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곤 했습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도 주변에 몇몇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이라 얼굴은 희미하지만, 우리는 좋아하는 곡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귀국하기 직전, 마지막 이벤트로 다 같이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던 것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이었지요. 엄청난 함성과 에너지, 좋아하는 밴드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던 그 밤을, 저는 하나의 그림 같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이라는 글자만 봐도 그날의 함성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기분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건 음악이 가진 굉장한 힘이겠지요. 순수한 감동. 이 이상으로 음악을 아끼는 제 마음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어폰을 통해 듣던 Coldplay의 Yellow와 In my place, Fix you 같은 노래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일본의 어느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15년 전의 저는 이 노래들을 들으며 한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스무 살을 갓 지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했던 시절. 햇빛이 부서지듯 쏟아져 내리던 호젓한 그 골목을 잊을 수 없는 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들었던 노래 덕분이겠지요.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많은 서사를 선물해주는 곡과 적절한 순간에 함께 한다는 건, 삶에서 몇 안 되는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장면을 오래오래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음악은 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되곤 하지요. 그날의 날씨, 공기, 풍경, 기분들이 음악과 함께 순식간에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음악은 어쩌면 기억을 더 미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잊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까지 자꾸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 어딘가에 추억을 저장하곤 합니다. 정성껏 모아둔 조각들을 이따금 꺼내보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겠지요.




시디를 소중히 보관하고, 모으는 기쁨을 알았던 그 시절의 제가 그립습니다. 유튜브에서 듬성듬성 듣다 넘기는 노래가 아닌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가사를 곱씹으며, 멜로디를 새기며 음악을 듣던 어린 시절의 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분명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지요. 우리들에겐 각자 자신만의 낭만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나날이기 바랍니다. 되도록 삭막해지지 않고 부드럽고 말캉한 사람이 되었으면.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낭만이 넘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가 좋아하던 노래를 오랜만에 꺼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시간에 대해 잠시 떠올려보기를.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오롯이 마음을 쓰는,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천천히 만들어 나가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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