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오래도록 좋아하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선우정아의 ‘그러려니’가 내게는 그런 노래다.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우연히 이 노래와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코끝이 시큰하다. 애절한 목소리와 마음을 아리게 하는 가사를 듣다 보면 7년 전 어떤 날의 나와 저절로 만나게 된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그러려니
살면서 일어난 어떤 이야기는 적합한 단어나 문장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감히 써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 앞에 앉아도 질질 울다가 그대로 전원을 끄기 일쑤였다. 마음이 번잡한 일에 대해선 최소 10년은 지나야 초연 해지는 사람인 모양이다. 아직 3년의 여유가 있으니 일단 뒤로 미루자며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미련하게 굴고 있었다.
때마침 몇 년 만에 듣게 된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냥 한번 써보면 어때, 하얀 종이 위에 뭐라도 쏟아내면 후련할 거야. 와르르 뱉어내다 보면, 캐캐 묵은 슬픔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야. 늘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노트북의 하얀 화면이 오늘은 내게 다정히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깊이 묻어두고 꺼내지 못한 마음에 대해 용기를 내어 쓴다. 선우정아의 노래처럼 더 이상 안부를 물을 수도, 만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된 친구이자, 한때는 제일 친한 사이라 자부했던 사람. 밝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 10대와 20대 모든 시간을 공유했던,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 이외에 가장 좋아했던 존재.
사소한 일에도 우리는 자주 웃었다. 내성적이던 내가 웃음 많고 조잘거리는 사람으로 바뀐 건 모두 그 아이 덕분이었다. 뭐 그리도 할 말이 많았는지. 학교에서 매일 보는 것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 통화를 하고, 학원을 함께 다니고, 교환일기를 쓰던 귀여운 시절이었다. 서로의 연애며, 가정사, 사춘기, 방황하는 마음을 지켜보며 우리는 함께 자랐다. 가타부타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 몇몇의 친구가 더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람이 인생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고향을 떠나 멀고 먼 서울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다. 행복한 기운이 가득하던 친구도, 마음에 열정이 꽉 차 있던 나도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언젠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해서 가까운 곳에 살면 좋겠다, 멀리 떨어지지 않고 가까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며 도닥이곤 했다. 20대엔 또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과 낭만이 있었는지. 무수히 많은 낮과 밤을 함께 울고 웃었다. 30대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상상을 하며 한강 언저리에 앉아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던 여름밤이 그 시절 나눌 수 있던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을 알아챈 건 내 쪽이 먼저였나, 아니면 친구 쪽이었을까. 싸우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닌데 만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가고, 연락도 뜸해져 갔다. 수화기 너머로 변명처럼 들려오는 친구의 말을 애써 바쁘다는 말로 바꿔 해석하며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많은 상상이 피어올랐지만, 겨우 약속을 잡고 만난 친구는 언제나처럼 그대로였다. 내가 예민했던 거구나. 혼자만 서운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럼 모든 것이 다 자연스레 지나갈 테니까.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이었다. 우리를 포함해 서울에서 자주 만나던 과의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맥주를 홀짝이며 TV 채널을 돌리다 갑자기 울린 SNS 알림을 보고 얼어붙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케이크와 샴페인, 음식, 그리고 다 같이 맞춰 입은 파자마까지. 내가 혹시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나? 연락하는 걸 깜빡했나? 태그 된 사진을 따라가 보니 친구들이 동시에 사진을 업로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우정 영원하자, 해피 뉴 이어!라는 글까지 곁들어서. 보란 듯이 일부러 올린 것이 분명한 사진 앞에서 무슨 생각을 더 할 수 있었을까. 평소와 똑같이 웃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처음 느끼는 기괴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전화나 문자를 했었던가. 아마 사진 속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제외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어린 시절에 만나 어른이 되고, 결혼이라는 인생 2막을 시작하려던 길목에서 우리는 완전히 타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이유 한번 묻지 못하고 맞이한 작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립된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가장 밑바닥으로 꺼져 들어가 스스로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근본적으로 나란 인간의 어디가 문제인 걸까?
어떤 이유든 들어볼 수 있었다면 자책 말고 원망이라도 할 텐데. 그게 불가능하니 나는 밑바닥에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슬프고도 무서운 경험이었다. 다른 종류의 슬픔이고 상실이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었다. 누구를 만나도 무의미했다. 마음속에 단단한 경계선이 생겼고, 그 선을 넘지 않고 적당한 감정만 드러냈다. 나라는 존재를 자꾸만 미워하고 부정하는 일이 잦아졌다. 스스로를 바스러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누구와도 진심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편하게 만나 인사 나누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각자 생각의 크기가 이만큼 자랐네. 이건 내가 잘못이었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하네 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하곤 했다. 어떤 날의 꿈에선 친구를 만난 적도 있었다. 너무 반가워 와락 껴안았는데, 깨고 나니 꿈이란 걸 알았을 때의 그 허무함이란.
결혼 직전, 친구에게 마지막 남은 용기를 모아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제일 좋아하던 사람으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 서운하고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꼈던 솔직한 마음을 말했고, 내 마음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애매모호한 친구의 대답이 이어지자, 잠시 멈춰 세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에 대해한 오해가 생겼다면, 왜 한 번이라도 직접 묻거나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돌아온 대답은 "미안해." 단 한마디였다. 한 시기의 완전한 끝을 알려주는 주는 말이었다. 같은 결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우리는 이미 서로 다른 인생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와의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장면이 번갈아 나타나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흔들었다. 전화를 끊으며 손은 덜덜 떨렸으나 완전히 홀가분해졌다. 더 이상 혼자서 의미 없는 울음을 짓지 않아도 될 테니.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 한, 우리가 만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실은 꿈이나 다른 차원의 삶에서 있었던 일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된 앨범 속 사진을 볼 때 떠오르는 추억과 진심 어린 응원들은 나의 몸 곳곳에 촘촘히 쌓여 있다. 지나온 시간들은 단단한 뿌리가 되어 삶이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제는 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더 이상 지지 않고, 가끔 차오르는 눈물쯤은 그러려니 하며 삶의 부분으로 껴안고 산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을 씩씩하게 마주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다행히 잘 살아내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다. 오지 않을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고, 다가올 시간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연에게 건강한 마음을 건넬 줄 아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마음이 아린 날이 불쑥 또 찾아와도, 그러려니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