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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Sep 07. 2021

플라타너스



 서울의 길을 걷다 보면, 분명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도로를 꽉 채운 자동차, 높게 서 있는 빌딩 숲에서 받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곧게 뻗은 나무에서 오는 남다름. 그중에서도 플라타너스는 어느 계절에 만나도 풍성한 잎을 흔들며 자신만의 분위기를 뿜어 낸다.

 서울에 잠시 머물던 시절, 그 나무 밑을 참 많이 걸었다. 내가 나고 자란 제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나무여서 그랬을까. 많은 가로수 중에서도 나에겐 플라타너스가 단연 최고였다.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쭉 늘어선 거리를 걸을 때면 마치 이 특별한 도시의 일원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일종의 허세를 안고, 햇살 가득한 낮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 속에 뒤엉킨 밤에도 나무 밑을 걸었다.

  


 젊고 패기 넘치던 시절의 나는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혈혈단신 상경한 서울에서의 삶은 즐거웠다. 그림, 사진, 영화, 전시, 흥미로운 수업,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등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기에 서울은 최적의 장소였다. 기쁜 마음으로 지옥철에 끼어 출근하고 새벽까지 사진을 찍었다. 세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스튜디오로 향하는 아침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유와 빵을 양손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들어서던 어떤 날엔, 살면서 오늘이 가장 완벽한 아침이라 생각했다.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먹지 않아도 배부르단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팡하고 터지는 플래시, 찰칵하고 눌리는 셔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늘 타인을 동경하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야 진짜 '나'라는 인간에 가장 가깝게 살고 있다고 느끼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로 점철된 대도시에서 적은 돈으로 산다는 건 눈물 나는 일이었다. 월급은 말도 못 하게 적었다. 하루에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는 것이 사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 앞의 분식점이나 패스트푸드 점으로 기어 들어가 포장을 하고, 정신없이 먹고 잠들기 바빴다.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하다 보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각종 경조사에 참석하기 조차 부담스러웠다. 친구들은 이른 결혼을 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미래를 위한 준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 괜찮아, 오늘 하루 너를 위한 삶에 충실했잖아, 그걸로 되었다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는 밤이 많아졌다.



 제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자 수시로 아팠다. 어떤 날은 몸이, 또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팠다. 스튜디오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언어로 소통하는 곳이었다. 이제껏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해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는데 욕이란 욕은 모두 그곳에서 들었다.

, 제주도 촌년!"이라는 말이 나를 부르는 이름표였다. 모든 사람들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박장대소하는데, 그저 헤헤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단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귀를 닫고 묵묵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취할  있는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해야만 하루를 살아낼  있었다. 다른 스튜디오로 옮겨볼까 했지만, 인맥으로 똘똘 뭉친 좁디좁은 세상이었다. 옮긴들 상황이 크게 달라질  없음을  알기에 조금씩 지쳐갔다. 가끔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쑥 울어버리고 말았는데, 그럴  누나는 누나 하고 싶은  하면서 살라며 등을 도닥이던 동생을 떠올렸다. 나만 생각하며 훌쩍 고향을 떠나온 결정을 무르고 싶지 않았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대로 버티는 삶을 사는  년이었다.



 번갈아 가며 오는 아픔을 견디는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에 대해 회의감이 밀려왔다. 한쪽 어깨에 늘 메고 다니던 카메라를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나 스스로가 안쓰러워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밤엔 아무 약속이나 잡고 의미 없는 술을 마시곤 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마음이 텅 빈 날엔 무조건 걸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역에서 내려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걸었다. 그때마다 걷던 길이 바로 플라타너스 밑이었다. 세월에 바랜 커다란 기둥은, 절대 쓰러지지 않을 듯한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의 세상은 쉴 새 없이 흔들리는데, 나무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저 고요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곧은 안정감에 혼자 배알이 뒤틀려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마음에 순식간에 휩싸였다. 분노는 차오르는데 쏟아낼 곳이 없었다. 아무 데나 풀썩 기대 서서 나무를 노려보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혼자 중얼거렸다. 듣는 사람이 없으니 중얼거리는 모든 소리는 그대로 나를 향해 돌아왔다. 결국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꼴이었다.

 


 산다는 건 너무 어려웠다. 제대로 살아보려 하면 삶은 자꾸만 넘지 못할 산을 내 눈앞에 세웠다. 오롯이 내 힘으로 잘 살아보고 싶은데. 원하는 건 단 하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 것뿐인데. 여기서 멈추면, 나는 대체 무슨 기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서울에 뿌리내리고 싶었던 나는 허무함이 짙어질수록 공포를 느꼈다. 어딘가에 홀로 내팽개쳐진 아이가 뱉어내는 두려움처럼. 이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무는 여전히 말없이 나를 내려다 보고, 한참을 중얼거리던 나약한 존재는 터덜터덜 집으로 가서 푹 쓰러졌다.      



 결국 나는 몇 개월 뒤 제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삶으로 돌아왔고 동시에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었다. 좀처럼 먹지 못했고, 돌보지 못한 몸을 회복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고픈 일 그만큼 해봤으면 됐다는 가족의 위로도 나에겐 아픈 말이었다. 집 근처 산책이 그즈음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산책을 하며 가끔 카메라를 들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으로, 1년 반 만에 서울에 방문하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엔 두려웠지만, 막상 서울에 도착하니 이 도시를 사랑했던 내가 저절로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플라타너스가 흩날리는 서울의 가로수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길에 서서 나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정말로 이렇게 사는 삶이 너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아니,라고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흠칫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갈 곳 잃은 내가 서 있는 곳은 또다시 플라타너스 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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