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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Oct 16. 2021

무인(無人)의 시대

무인 가게 속에 숨겨진 비밀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무인 편의점, 무인 카페, 무인 옷가게, 무인 밀키트 전문점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자주 다니는 동선 안에 비슷한 종류의 가게가 서너 개쯤은 쉽게 겹친다.

 바야흐로 무인(無人)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사람은 없고 기계로 계산을 하는 가게라니, 어쩐지 어색하기도 하고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니 혼자만의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카페나 음식점이 새로 생길 예정'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곳을 지나칠 때면 어떤 곳일까 늘 궁금해진다. 맛과 분위기가 부디 내 취향에 맞기를 바라며 가게 오픈을 기다린다. 이제는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은 무인 가게 역시 새로 생길 때마다 꼭 들여다보게 되는 곳이다. 호기심을 품고 기웃거리다 불쑥 매장에 들어가 밀 키트를 구매하거나 아이의 액세서리를 산다. 자판기가 건네주는 커피도 마셔보고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은 없나 구경도 해 본다. CCTV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주인 생각에 그냥 나오기에는 영 미안해서 뭐라도 하나 집어 키오스크로 향한다. 계산을 하고 나서 사람 대신 커다란 기계에게 '안녕히 계세요' 하며 나온다. 기계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여러 번 이용해본 지금은 오히려 편해졌다.

      

 

 무인 가게는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는 흥미로운 곳이다. 이용방법이나 공지사항을 깔끔하게 프린트해서 붙여놓은 가게가 있는가 하면, 귀여운 손글씨로 아기자기하게 코멘트를 남겨놓은 곳도 있다. 물건 고르는 동선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리해 놓은 흔적, 추천하는 물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적어둔 글씨, CCTV로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 문구 아래 방문해주신 분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감사 인사 등등. 얼굴은 모르지만 이 공간을 아끼며 돌보는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주인과 마주친 적은 없지만 가게 곳곳의 흔적만으로도 이미 인사를 나눈 기분이다. 그리고 막연히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게를 시작하고, 또 운영해 나가고 있을지.


         

 한박 작가의 '무인 편의점에 사람 있어요' 매거진 시리즈를 보면 그 고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중 눈길이 오래 머물던 문장이 있다.          


내가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수락했을 때는 나름의 자신이 있어서였다. 가게를 잘 운영하겠다는 다짐, 수익을 내기 위해 가진 잔재주를 총동원해서 한번 성공해보겠다는 다짐. 수십억 자산가는 못되더라도, 갑자기 벼락부자는 아니더라도 끙끙 댄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오물에 발을 적시는 나는 계산에 두지 못하였다. 쓰레기통에 손에 넣는 나를 상상하지 못하였다.  

- 한박 에세이 '청소일 안 하는데요? 중에서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일반적인 가게보다는 편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나 역시도 했었다. 혼자서 운영하니 인건비도 줄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니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일은 없지 않을까. 요즘 떠오르는 핫한 아이템이니 돈을 많이 버는 건 당연하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상상력은 무한하므로 이런저런 선입견을 잔뜩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작가의 글엔 무인 편의점을 운영하며 생기는 다양한 상황이 등장한다.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하니 부침이 있는 건 당연했다. 사장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으나 그 환상은 매번 깨지기 일쑤였다.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데에서 오는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이 이어졌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훔쳐가는 건 일상이요, 자물쇠를 몇 개나 걸어두고 불안함에 떨어야 했다. 선입견에 상처 받으면서도 매장을 정성껏 쓸고 닦는 모습에선 얄팍했던 지난 생각들이 부끄러워졌다.




 이후, 무인 가게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에 작은 변화가 일었다.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엊그제 방문한 밀 키트 매장에서의 일이다. 들어섰을 땐 아무도 없었는데, 결제를 하려고 하자 갑자기 안쪽 문이 열리며 주인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오늘 받을 수 있는 할인이 있다며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시는 게 아닌가. 할인 방법에 대해 매장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은 나는 제값을 주고 계산하고 그냥 갈 뻔했던 것이다.


"다들 할인이 있다는 걸 잘 모르세요. 그냥 가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더라고요. 안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지켜보고 있다가 나와서 도와드리고 있어요."


 물 묻은 손을 급히 닦으며 설명을 이어가는 주인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무인 가게에서 처음으로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하고 나왔다.

 

 오늘 아침 장을 보며 지나온 무인 카페에는 곧 다가올 핼러윈을 기념하는 장식이 매장 곳곳에 예쁘게 달려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구경하며 커피 한잔을 키오스크로 주문했다. 벽에는 그곳을 종종 이용하는 사람들의 쿠폰이 귀여운 클립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듯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곳곳에 그곳을 돌보는 사람의 따스한 흔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에는 늘 몇 명씩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찾아냈던 게 아닐까. 사람이 없는 이 공간에도 사실은 따스한 온기가 있다는 무인 가게에 숨겨진 비밀을. 매일 같이 부지런히, 그곳을 애정으로 채우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인(無人)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그들의 흔적을 기분 좋게 발견하고, 부드러운 격려를 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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